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17)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시는가?(창8장13-22)

금빛돌 2021. 10. 29. 21:51

지난 시간에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때의 세상을 심판하셨던 목적은 절대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면 회복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이 됩니까?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심으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의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마음이 황폐하여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이 노아홍수로 폐허가 된 세상과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진정한 회복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무엇보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지금도 마음에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역사를 어떻게 일으키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의 바람을 불어주심으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 성령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따라서 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성령을 따라 갈 때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그칩니다. 또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갈 때 모든 것이 다 자기 위치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있을 곳은 서로 판단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염려하고 걱정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있을 곳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따라서 우리가 있을 기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성령을 따라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회복의 역사는 긴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고통가운데서 참고 견뎌야합니다. 도망가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고통가운데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의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작은 감람나무 새 잎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감람나무 새 잎을 가지고 이제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혹 우리에게 그 어떤 인간적인 감람나무 새 잎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저는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을 보면 감람산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와 땀을 흘리시고 기도하신 예수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그 어떤 감람나무 잎이 보이지 않아도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희망의 감람나무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고통 가운데라도 기쁨으로 인내하면서 회복을 소망하며 기다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까?

첫째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가 죽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베드로 전서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노아가 홍수에서 나오는 사건을 세례의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홍수의물은-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사도 베드로는 노아홍수때 물은 너희를 구원하는 세례를 상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출애굽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10장 1절과 2절에서도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를 지나간 것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방주에 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물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 홍수 때의 물은 세례 때의 물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세례 때의 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상징합니다그래서 세례 때는 물이 푹 잠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에서 나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내가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코로나로 폐허가 된 이 세상이 새롭게 회복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또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세상은 바뀔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 세상은 바뀔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과연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이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전에는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고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홍수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홍수의 심판 있어도 사람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죽어야 바뀔 수 있습니다사람은 죽어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죽어야합니까? 우리의 옛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죽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 자아가 완전히 죽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이미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세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물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가 터키에 갔을 때 초대교회 때 만든 지하 8층에 있던 동굴교회를 보고 왔습니다. 십자가 형태로 만들어진 예배실뒤에 세례 탕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곳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세례탕은 사람이 잠길 만한 깊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때는 분명 세례를 받을 때 물에 잠기는 예식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내가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시에 물에 나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십자가의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죽었나니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새로운 피조물)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깨달음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새롭게 깨달아야할 복음이 무엇입니까복음이 단순히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의롭다 함을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가 죽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또 내가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한국 초대 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다고 합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그 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얻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너는 요절이 났을 것이다.” 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홍수의 물속에서 나온 것이 세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물속에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코로나로 폐허가 된 이 세상이 어떻게 회복이 될 수 있습니까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축복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진정으로 믿어야합니다. 더 이상 나의 옛 자아로 살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이 이미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의 시험을 주십니까끝날 것 같은데 왜 끝나지 않는 고난들을 주십니까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은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믿으십니까내가 죽었다면 누가 나에게 무엇이라 하든지 상관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내가 나를 죽이지 못하니 문제가 아니라 내가 죽었음을 완전히 믿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그래서 날마다 나는 예수님과 죽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나는 이미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더 이상 나는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래서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회복된 세상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이미 못 박혀 죽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살아 있을 때 우리가운데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십니까?

둘째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이제 홍수가 끝이 났습니다. 비만 그친 것이 아니라 모든 물이 다 말랐습니다. 물만 마른 것이 아니라 땅도 다 말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 방주에서 나와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노아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이 마르고 땅이 말라도 방주에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방주가 인간적으로 살기 좋은 곳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가 다른 동물에게 먹이를 주니까 사자가 화가 나서 노아를 발로 쳐서 노아가 불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방주에서 나가지 않았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하나님께서 아직 그에게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는데 방주에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그때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7:1)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주석하고 있습니다.

일 년 내내 힘든 홍수 기간을 견뎠고 이제야 홍수가 멈추고 새 생명이 비치게 되었는데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는 무덤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이의 용기를 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방주를 인간적으로 보면 무덤 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방주는 인간적으로 보면 빨리 나오고 싶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용기를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개혁주의라고 하고, 칼빈의 후예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표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성경이 가라하는데 가고 성경에 서라 하는데 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성경에서 하지 말라 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내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성경에서 하라고 하는 것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절대성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말씀을 듣기만 하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까? 우리가 기도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그러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도 기도하는 자인 것처럼 자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또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여러분들은 지난주에 들었던 말씀을 잊어버리십니까그 이유는 그 말씀을 듣고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그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왜 말씀을 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도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다음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말씀)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또는 말씀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그런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그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에 따른 복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무덤과 같은 곳이라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무엇이라도 순종함으로 달려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받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십니까?

세째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우리는 마음껏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여호와께 제단을 샇고 있습니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성경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린 사람은 노아가 최초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제사를 드렸지 제단을 쌓거나 번제를 드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노아가 왜 제일 먼저 집을 짓지 않고 살 터전을 만들지 않고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까? 먼저 그 이유는 노아는 방주에서도 여호와께 끊임없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방주에서 예배가 아니면 숨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코로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시겠습니까? 코로나의 상황가운데서 끝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는 분명 하나님께서 내년에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어려운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키신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가 왜 제사를 드렸습니까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노아는 자신과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오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십니까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입니다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노아가 제사를 드린 것은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기 위함입니다.

20절에서 노아가 정결한 짐승으로 번제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번제의 제사에 대해서

1:4. (제사드리는 자)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동일시전가)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제사를 드릴 때 자신의 모든 죄를 제물에게 전가를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세상의 모든 죄를 정결한 제물에게 전가를 시켰습니다. 그랬을 때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제란 죄를 사해 준다는 것입니다. 덮어준다는 것입니다.

용서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제사를 드릴 때 어떻게 드렸습니까?

하나님 홍수가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우리는 여전히 악합니다그러하오니 주님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라고 하는데여러분 이 향기가 어떤 향기이겠습니까단순히 제물의 향기이겠습니까? 사실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태우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보면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향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김지찬 교수님은 “번제 자체의 향기 보다 번제를 드리는 노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하나님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악한 냄새를 뿜어냈다면 노아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아름다운향기를 드러냈습니다또 노아는 감사의 제사로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냈습니다또 노아는 제사를 드릴 때 모든 사람을 용서함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냈습니다. 무엇보다 노아는 제물에 안수함으로 노아 그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다시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노아의 향기 나는 예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이 예배시간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음을 고백하는 사람을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배시간에 감사하는 자를 통하여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배시간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 지금도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음과 순종과 감사와 용서의 향기를 받으시고, 이 땅을 회복시키시고, 우리 모두를 회복시키실 줄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