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연구/창세기

창세기강해(13)심판과 은혜(창6:1-10)

금빛돌 2021. 10. 2. 19:07

인간이 범죄 한 후에 인류를 두 갈래 길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가인의 후손의 길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셋의 후손의 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후손의 대표인 라멕이 나옵니다. 라멕은 자기 마음대로 두 아내를 둡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죽입니다. 또 하나님이 벌을 칠 배나 준다면 자신은 벌을 칠십칠 배를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에는 셋의 후손이 나옵니다. 셋의 후손의 대표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가인의 후손과는 달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이 아이가 죽으면 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죽으면 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뜻에서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매일 이 땅의 종말과 심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에녹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에녹은 삶의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은 가인의 길을 가지 말고, 에녹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인의 길이고, 또 하나는 에녹의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절대 가인의 길을 걸어가지 마시고, 에녹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길이 아니라 에녹의 길을 걷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절과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기서 보시면 사람들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가인의 후손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누구의 모습이었습니까? 가인의 후손의 대표인 라멕의 모습이었습니다.

4: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여기서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했는데, 하나는 아다요 라고 하는데, 아다는 아름답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멕은 단순히 외모의 아름다움 때문에 아내를 취합니다. 또 씰라라는 뜻은 딸랑거리는 자, 아부하는 자, 악기다루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두 아내를 취합니다. 또 그 아내를 취하는 기준도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또 인간이 귀를 즐겁게 하는 악기를 다루거나 인간적으로 아부하는 자를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창세기 5장까지는 그래도 가인의 후손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에 와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후손과 같이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아내를 취합니다. 또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그 여자가 결혼을 한 여자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무조건 내가 좋으면 무조건 아내로 삼습니다. 또 아내로 삼으면 이미 있는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까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또 그 자녀들 간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대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인의 후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나의 영이 신(성령)이 영원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영적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이 세상 사람들을 따라서 갈 때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성령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노아시대 때에는 가인의 후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육신의 정욕만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날이 백이십년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120년 뒤에 이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에 근거해서 노아가 방주를 만든 기간이 120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정욕만을 따르는 사람들을 당장 심판하시면 되는데, 120년을 유보하십니까? 그 이유는 120년의 기간 동안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39절에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하나님은 참고 또 참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습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한 그 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지 않는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계속해서 자식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 낳은 자녀들이 용사라고 합니다. 또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고 합니다. 또 이들을 네피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4. 그 때 그리고 그 뒤에도 세상에는 느빌림(내피림)이라는 거인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옛날부터 이름난 장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네피림과 용사와 명성이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지 않는 사람의 딸들에게서 낳은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이들이 싸움을 잘하는 용사이고, 또 명성이 있다고 하면 이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낳은 자녀에 대해서 먼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네피림이라고 합니다. 네피림이란 거인으로 타락한 사람, 혹은 폭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타락하고 폭군과 같은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5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고 합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다는 말은 죄가 세상에 모든 곳에 퍼져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씩으로 말하면 죄가 정치계에도 언론계에도 사법계에도 교육계에도 종교계에도 모든 곳에 죄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가 온 세상의 모든 영역에 퍼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죄가 단순히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회구조가 바뀌면 세상은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세상에 죄가 없어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죄는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죄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만드실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죄가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함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처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는 좋아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에 근심하십니다.

/저는 한 주간 동안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근심하셨다는 말씀을 계속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분노하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근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분노와 근심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교사는 분노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점수가 떨어지면 선생도 교사 점수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자신의 교사점수가 떨어진 것 때문에 아이에게 분노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근심합니다. 성적이 떨어진 것 때문에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때문에 근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분노와 근심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분노는 사랑이 없는 것이고, 근심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죄에 대하여 분노하십니까? 아니면 근심하십니까?

하나님은 이 땅의 죄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으시고 근심하셨습니다. 한탄하셨습니다.

비록 이 땅이 죄로 인해서 완전히 쓸어버릴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하여 사랑으로 근심하심으로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사랑하시니까 그냥 둔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쓸어버린다는 말은 기억도 못하도록 완전히 없앤다는 말씀입니다(17:14)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이 무슨 자격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십니까? 왜 완전히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에덴성전을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죄가 가득해서 더 이상 하나님이 거하시는 세상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께 거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홍수는 지금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본심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죄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하여는 완전히 쓸어버리려 하십니다. 또 죄로 가득 찬 인간에 대해서도 완전히 심판하시려 합니다.

그래서 노아홍수는 장차 이 최후심판의 예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지 않은 이 세상은 노아홍수 때와 같이 완전히 심판하십니다. 노아 홍수 때는 물로 심판하시지만 최후의 심판 때는 불로 심판하십니다.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의 아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십니까? 우리 인간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매일을 지구 종말의 날로 여기며, 내 인생 최후의 날로 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녹과 같이 매일을 종말의 날로 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아시대에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그래서 9절과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역사, 이야기)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여기서도 노아의 족보라는 말도 톨레도트라는 말입니다. 5장에서도 아담의 톨레도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이 족보 역사 이야기로 번역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노아의 이야기라고 번역하고,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노아의 역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노아는 의인이라고 합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합니다. 노아가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노아가 의인라는 말은 이런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또 당대에 완전한 자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완전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노아가 이런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며 살았습니까?

그가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당대에 완전한 자로 살 수 있었습니까?

그가 어떻게 이런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 이유가 7절에 있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대에도 노아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이런 시대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창532절에 있습니다.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잘 보시면 노아가 몇 세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까? 오백 세 된 후입니다.

5장에 아담의 족보를 보면 보통 육십 몇 세에 자녀를 낳았더라 하고, 늦어도 백여 세에 자녀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500살이 될 때 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자녀는 모든 복의 기준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았다고 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던 시대였습니다.

또 성경에서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했을 때 노아는 50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주시는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500년 동안을 철저한 실패자로 살았습니다. 500년 동안을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의 복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까?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완전한 실패자로 생각했던 사람에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성경전체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도 언제 나타나셨습니까? 80세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백성에게 조차도 거절을 당하였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는 40년 동안 실패의 광야를 걸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도 잘 걸을 수 없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밖에 없을 때입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장인의 집에서 양떼를 기르는 일밖에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꽃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어떤 자를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까? 실패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인간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절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인간적인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실패자인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있는 실패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실패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번성하고 잘 될 때를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하나님의 아들들이 믿지 않는 사람의 딸들을 자기 마음대로 취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았을 때 언제 우리가 죄를 짓기 쉽습니까? 우리가 실패하고 낙심할 때도 되지만 번성하고 잘 될 때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세아 47절에 보면 4: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번성할수록 죄를 짓기 더 쉽습니까? 411절에 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성하면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에 빼앗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 신8장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번성하면 우리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른 곳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한 순간도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난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고난은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백신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한 순간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면 살수 없도록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예수님이 아니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도록 합니다. 고난은 우리도 하여금 더 이상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하나님의 백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어떤 고난가운데서 위축되지 마시고,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더욱더 하나님만 바라보시며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또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세상의 심판의 원인은 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시대에 세상에 죄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원인은 단순하게 가인의 후손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세상에 죄가 가득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 사람들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노아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는 어떤 것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가 어떠하다고 말씀하십니까?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노아시대 때 사람들이 더 특별한 죄를 지었다가 보다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다가 홍수가 나서 더 멸망하였다고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 드는 일이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가운데 단순히 일상적인 일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을 문제를 삼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인 일에 빠져서 살아가다보면 노아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일상적인 일에 빠져서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매일 일상적인 일을 하더라도 매일 그 날이 주님이 오시는 날인 것처럼 하고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장가를 가도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고 장가가는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내가 시집가는 일을 생각해도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고 시집가는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일상적인 일을 하더라도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고전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주님이 오늘 밤에 오신다고 생각함으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함으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상대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집가는 일이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일을 절대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장사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일이 하나님과 같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기쁜 일이 있습니까? 그 기쁜 일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슬픈 일이 있습니까? 그 일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일에 빠지면 그것이 절대화 되어 그것이 마치 하나님과 같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고 세상의 일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아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일상적인 일에 빠져서 살아가지 마시고, 매일 종말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분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이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은혜입니다.

무엇보다 다르게 살 수 있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노아처럼 심판의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파하면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