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별이 되어(계5:1-9)
사도요한은 4장에서는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성부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장에서는 사도요한 성자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여기서 보면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두리마리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책입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단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벽옥-공의)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홍보석-심판)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 하십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금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세례요한 당시에 로마 정부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교회 안에 발람과 같은 자들과 이세벨과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 2,3장에서 보았듯이 초대교회를 사탄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계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우상숭배)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이세벨의 교훈)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계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런데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는 내용이 담긴 그 두루마리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심판하는 두루마리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기 일곱 개의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개의 두루마리가 일곱 개의 끈으로 묶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끈에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렇게 도장이 찍힌 것은 아무나 이 두루마리를 열어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다는 말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하늘의 천사가 “누가 이 두루마리를 펴기 위해서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위에서 땅위에서 땅 아래 그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의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하늘과 땅에 그 어느 누구도 이 심판의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없어서 요한은 크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요한이 왜 이렇게 크게 울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큰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 사탄으로 말미암아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계6장에 보면 이 사탄은 우리가 서로 싸우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경제적 가난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육체적인 질병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순교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발람과 같은 자들이 죄를 짓게 합니다. 이세벨과 같은 자들이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한다는 내용이 담긴 그 책이 열려져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심판의 책을 열자가 없어서 사도요한은 크게 울고 있습니다.
이때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 세상과 사탄을)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24장로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합니다. 유다지파의 사자, 그리고 다윗의 뿌리가 이 세상을 이겼으니 그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다지파의 사자(라이온)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운데 유다 지파에서 나오셨습니다.
창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윗의 뿌리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다윗 왕의 자손이지만,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실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지파의 사자로, 다윗 왕의 뿌리로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일곱 인을 떼신다는 말은 먼저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여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심판의 책이 열릴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실 왕이십니다.
--그런데 6절과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이 말씀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심판의 두루마리 책을 취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도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대해서 앞에서는 사자라고 하고, 또 여기서는 어린양이라고 합니까? 사실 사자와 어린양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는 정복자 심판자를 뜻하고, 어린 양은 희생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앞에서는 사자라고 하고, 뒤에서는 어린양이라고 합니까? 초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초림 때 희생당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재림 때 사자같이 이 세상과 사탄을 완전히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사탄을 심판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심판의 책을 여시는 분으로 묘사하면 더 좋지 않습니까? 앞에서도 분명히 예수님을 사자와 같은 분이라고 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여기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심판의 책을 열어보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서 달려서 희생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어떻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적처럼 달고 다닌다고 해서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십자가의 삶입니다. 희생의 삶입니다. 죽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계 12장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고소)하던 자(사탄)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사탄)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사탄)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희생함으로)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0절에서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11절에 보시면 우리 형제들이 어떻게 그 사탄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첫 번째는 그들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희생함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어떻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정죄하는 사탄을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가 사탄을 우리 인간적인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왜 심판의 책을 떼시는 예수님을 희생을 당하신 어린 양으로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십자가의 삶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고려신학대학원교수님들이 내신 요한계시록 주석에서는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애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에 곧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죽임 당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어린양은 그런 죽임 당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로 보건대 죽음도 하나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어릴 때의 상처처럼 하나의 흔적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의 죽음은 하나의 과거의 경험이 되고 만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지나간 경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죽음의 경험을 가지고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지상에서의 죽음의 경험을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영광스러운 죽음이었다. 두고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지는 죽음이었다. 따라서 어린양 예수님은 (천국에서) 그런 영광스러운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천국에서도 예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상처의 흔적들은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받았던 모든 상처들이 완전히 없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저 천국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받았던 모든 상처들이 다 없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의 모든 상처들이 다 없어지지만 저 천국에서는 상처의 흔적들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받았던 그 모든 상처의 흔적들이 저 천국에서는 영광스러운 별처럼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예수님 때문에 받았던 상처들이 많은 만큼 저 천국에서는 더 큰 영광스런 상처의 흔적들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더 수고한 만큼 그것이 영광스러운 상급이 되고 별이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처가 별이 되어”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고난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 어떤 고난도 뜻 없는 것은 없습니다. 견디고 이기면 반드시 상처가 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당했던 모든 상처가 저 천국에서는 더 영광스런 별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을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8.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그 (심판의)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우리가 이 시간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영적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특별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기게 됩니다.
계8장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금대접)으로부터 하나님(보좌)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답 깁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때 계8장 5절에 보면 그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땅에 기도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가 절대 허공만을 울리는 메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가 하늘의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겨져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기서 드리는 이 기도에 대해서 래드라고 하는 신학자는 우리가 한번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함께 해온 기도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기도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거저 몇 번 기도했다고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오랫동안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기도가 하나씩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겨져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영안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고, 그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이 땅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