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롬13:11-14)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시기란 종말의 시기를 말합니다. 또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종말과 재림의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몇 년 몇 월 며칠은 모르지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 42: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종말의 정확한 연도와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대략 ad27년-28년경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그때에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2000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더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여기서 이 시기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구의 종말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개인의 죽음도 종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개인의 종말도 항상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24: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보면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 없지만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라고 4번씩이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7절에 보면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확한 종말의 날과 때는 알 수 없지만,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가운데서 깨어있으라는 말이 그 날이 몇 년 며칠인지에 대해서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가운데서 깨어있으라는 의미는 문맥으로 보았을 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첫째는,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매일을 종말의 날로 여기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24장 42절에 보면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25장에 보면 무엇이 종말에 대해서 깨어있는 삶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종말에 대해서 깨어있는 성도의 모습이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종말에 대해서 깨어 있지 않는 성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그릇에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가지고 있었고, 기름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등과 함께 기름그릇에 기름을 준비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기름그릇에 기름은 낮에 쓸 기름이 아니라 신랑이 오는 밤에 쓸 기름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밤에 쓸 기름그릇을 낮에 들고 있다는 것은 신랑이 비록 밤에 늦게 오지만, 이미 신랑이 왔다고 생각하고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종말에 대하여 깨어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지 매일 매일을 주님이 오시는 날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갔습니까? 그것은 그들은 매일 매일을 주님이 오시는 날로, 종말의 날로 여기면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사람들의 첫 인사말을 “마라나타-주님이 곧 오십니다”였습니다.
//만일 여러분 이 번 한 주 간 만이라도 “오늘이 지구 종말의 날이다.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들인 다운 삶을 자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현재를 주님이 오시는 날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현재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지금 이 시간을 종말의 날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현재 내게 맡겨주신 일에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시고, 매일 매일을 종말의 날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깨어있으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에 대해서 깨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마24: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24:34 가령 사람(예수님)이 집(세상)을 떠나 타국(천국)으로 갈 때에 그 종(직분자)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직분자)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직분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직분자에게 맡기신 사무에 대해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무에 대해서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4장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그래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무란 단순한 행정적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에 항상 깨어 있어야합니다.
//또 이 말씀에서 우리가 돌아볼 사람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양식이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치료재로서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사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음식이 제일 좋은 음식이겠습니까? 음식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그 사람에게 제일 비싸고 좋은 음식을 사준다고 하면서 마음이 편하게 하지 않으면 그 음식은 모래알과 같습니다. 음식을 사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그 음식이 정말 좋은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재림의 주님께서 오늘 밤이라도 오시면 어떤 사람에게 칭찬을 하시겠습니까? 형제의 아픔을 돌아보지도 않고, 오직 주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재림의 예수님이 오시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십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에 깨어 있어야합니까? 교회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항상 깨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고후11:28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준 교회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교회에서 내게 맡기신 사람들에 대해서 항상 깨어 있어서 돌아보는 삶을 살고 있으면 오늘 밤이라도 주님이 오신다면 기쁨으로 그 주님을 맡이 하게 될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는 삶입니다. 그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삶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그러면 무엇이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삶입니까?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여기서 보시면 방탕하거나 술 취함은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절제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음란과 호색도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음란의 죄악에 빠져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툼과 시기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도 어두움의 일입니다. 또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도 어두움의 일입니다. 이런 어두움의 일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어두움의 일에서 깨어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