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삼삼23:15-29)
오늘 본문은 다윗이 십 황무지와 마온 황무지에 도피하여 있을 때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5절-18절까지는 다윗이 요나단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9절-22절은 십 사람들의 밀고로 다윗이 큰 위기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신 사건입니다.
먼저 16절을 보시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나단이 사울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원래를 원수의 관계가 될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19절에 나오는 십 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같은 지파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다윗을 도와주어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원수 집안에서 다윗을 도와주고,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합니다.
그러면 왜 다윗의 원수 집안인 요나단은 다윗을 도와주고, 반대로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의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합니까?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씀이 시편 54편에 있습니다.
시편 54편은 이렇게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특별히 시편 54편 3절을 보시면 십 사람들을 낯선 자들이라고하고 포악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유다지파 사람이지만 다윗은 그들을 낯선 자들이라고 합니다. 낯선 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은 외인도 아니라 가족이라고 할 때 외인 즉 낯선 자라는 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 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들이만 마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다는 말입니다. 또 그들이 포악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다윗을 밀고 하여 죽이려 하고 하는 이유를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과 원수인 사울의 아들이 다윗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신앙적인 이유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그 앞에 두고 사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같은 집안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그들 앞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정말 하나님의 백성답게 위기 가운데서 서로 도와 줄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서로 잘 해보자 고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같은 고향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를 도와 달라고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인간관계는 우리 앞에 하나님을 두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 들끼지 서로 좋아서 만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사귐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또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야합니다. 예수님 앞에 서야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 앞에 서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서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친구와 같은 그리스도인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인 인간관계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람 앞에서 어떻게 관계를 하느냐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면 사람을 대할 때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고 하는 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절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사람들도 인정해 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직분 자를 세울 때도 어떤 자를 세워야 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사람 앞에 서 있느냐를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26절과 27절에 나옵니다.
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십사람들의 밀고 이제 다윗은 사울에 의해서 에워싸여 있고 곧 잡히는 위기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7절에 “27.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때 마침 전령이 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어쩔 수 없이 다윗을 두고 돌아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인생 가운데서 정말 절망이다고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나는 죽었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우리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까지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살아오시면서 이런 경험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정말 이제는 내 인생이 끝이다 절망이다 희망이 없다 인간적으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때 놀랍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함께 해 주십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 하나님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들립니다. 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면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사람들도 다 알아준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인생의 그 어떤 위기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이 절망일 때가 하나님 함께 하실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기도할 때 그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절체절망의 위기가운데서 기도의 끈을 절대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시편 54편에 다윗이 이때 기도한 내용이 나옵니다.
시편 54편 4-7절입니다.
시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이 내 생명을 붙들어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시54:5절을 보시면 “6. 내가 낙헌제(감사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시편 54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편 54편은 하나님께서 위기가운데서 다윗을 도와주시고 난 다음에 쓴 시가 아닙니다. 다윗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난 다음에 쓴 시가 아닙니다.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밀고 하여서 지금 다윗이 곧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입니다. 쓴 시입니다.
가장 큰 위기의 때에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슬픔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시54:6절에 보시면 다윗은 이런 가운데서도 감사의 제사로 주님께 제사하리라고 합니다. 또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십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7절에 보시면 모든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거지셨다고 합니다. 또 내 원수가 보응을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다고 과거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이미 받은 것처럼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기도할 때 이미 받은 것처럼 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걱정 되는 일이 있습니까?
건강이 걱정이 되십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할 때 이미 받은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미 믿은 것처럼 현실가운데서 역사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