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심판 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조나단 에드워드)

금빛돌 2021. 4. 24. 22:17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리라”

(고후 1:14)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장의 앞부분에서 자신이 사역하는 동안 겪은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본문과 바로 앞의 두 절에서는 어려움 가운데서 받은 위로와 격려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특히 여기에는 4가지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바울 자신의 양심이 이를 증거합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둘째, 바울 사도는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증거가 되는 것처럼 지금 자신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이 자기의 위로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이 심판 날에 바울에 대해 증거 할 것입니다.

셋째,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역의 수고와 고통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복된 열매는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 있을 고린도 교인들의 행복과 영광입니다.

넷째,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재판장이 그 날에 자기의 신실함을 인정해 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마지막 항목의 세 가지는 본문과 바로 앞의 두 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네 가지 모두가 본문에 다음과 같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본문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자신들 가운데서 신실하게 사역한 사람으로, 심판 날에 자기들이 받을 기쁨과 영광의 수단으로, 심판 날 기쁨으로 함께 만날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음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그 날에 재판장 앞에서 고린도 교인을 기쁨으로 만나 자신의 사역의 열매로 그들이 받은 영광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기쁨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기대하는 것은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이 재판장 앞에서 틀림없이 만나게 될 것인데, 그 때 가장 위대한 재판장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 재판장은 자신의 신실함을 인정해 주시며, 이것이 바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재판장께서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을 바울의 기쁨의 면류관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도 바울이 자기 양심에 이런 확증이 없었다면 이런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은 바울이 자기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함축해 주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항목 속에 모두 내포되어 있으며, 본문의 모든 부분 속에 담겨 있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리)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그리스도의 재판석 앞에서 반드시 서로 만나야만 한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아무리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헤어져야만 합니다. 만일 생전에 헤어지지 않았다면 죽음이 반드시 헤어지게 만듭니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확실하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조금만 세월이 지나도, 태양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어떤 사람이나 가족, 마을이나 교회, 나라에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가장 단합이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분열되고, 가장 거리감이 생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서로 가장 존중하고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생각이 달라지거나 감정이 식어질 뿐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에 해를 입히거나 양자 사이의 모든 관계가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먼 곳으로 떠나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서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더라도 목회자와 교인들이 반드시 한 번 더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마지막 큰 심판 날입니다.

나는 앞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심판 날 어떤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어떤 이유로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런 방법, 그런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1.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만나게 될 것인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문제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성도들은 심판 날 모든 인류가 서로 만나는 방식으로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만남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서로 만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만나는 것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온 세상이 서로 만나는 방식으로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그 때 함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세대의 모든 인류가 선택받은 천사나 타락한 천사를 막론하고 모든 천사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회중으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든 회중 각 개인에 대한 구별되는 특별한 지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보다 훨씬 더 많아지겠지만 무한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이해력과 인지력은 크게 확장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신격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한한 지성의 본질상 어떤 사람은 그 날 다른 사람보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지식이 더 많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특정 사람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과 신하들, 지상의 재판관과 재판받은 사람들,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이웃들, 거래하고 논쟁한 사람들, 한 집안 식구들이 그 때 만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목회자와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그 날에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각자의 관점이 있을 것이며, 분명하게 서로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비록 그 때에 그들은 온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어떤 직접적이고 특별한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함께 모이게 될 대다수 사람들은 지상에서 서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심판받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목회자들에게 목양을 받았던 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은 반드시 특별히 만나게 될 것이고, 함께 재판장에게 인도될 것이며, 모든 것을 심판받아야 할 위대한 날에 있을 모든 일에 대해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은 만남의 방식에 있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만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은 이 세상에서 서로 만나던 것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이 세상에서 자주 함께 만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적인 예배와 교회의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일마다 만나고, 그 밖의 시간에도 만납니다. 이 외에도 그들은 자주 만나 교회에 필요한 여러 안건을 의논하고 결정하며, 교회의 권징을 처리하고, 공적으로 순결과 선에 관련된 일들을 처리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만나는 것은 만남의 방식과 환경에 있어 이 세상에서 서로 만나던 것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이 회중 속에 있는 죄인들은 목사의 사역과 수고를 통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죄와 저주의 진노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상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상태로, 영원한 기업을 받기 합당한 상태로 변화될 가능성, 즉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목회자를 만납니다. 또한 성도들은 지금 부패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 때로 큰 영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가진 상태로 목회자를 만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직 자신들의 상태를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으며,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에 참석하면서 소망을 가질 이유가 있고 또한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목회자를 교인들에게 은혜 주시는 도구로 삼기를 기뻐하십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지금 이러한 행복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만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진지한 만남을 통해 큰 유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 날에 서로 만나게 될 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그 때는 이런 변화를 초래하는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불변의 상태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불변의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 때 죄책과 죄의 권세 아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것이고, 변화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없을 것이며, 구제나 치료 혹은 수단을 사용해서 더 좋아질 아무런 희망 없이 자신의 목회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이미 이전에 남아 있던 온갖 부패, 유혹, 재난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의 사역을 통해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또 다른 해방이나 행복을 이룰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이렇게 선언될 것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계 22:11).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길잡이와 선생이며, 교회에서 빛과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현재의 상태에서 때때로 교인들을 만나 가르치며, 빛을 비추어 주며, 잘못을 바로잡아 주며, 교인들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치우지려고 하면 “이 길이 정로니 너희는 이 길로 행하라”(사 30:21)고 외칩니다. 또한 합당한 증거를 가지고 진리를 확증해 주며, 오류와 잘못된 견해를 논박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주고, 의문은 풀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심판하실 때, 모든 오류와 잘못된 견해가 드러나게 될 것이며, 모든 거짓과 속임수가 그 날의 빛 앞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이는 밤의 어두움이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교리는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은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진리에 대해 큰 확신을 가질 것이며, 잘못을 바로잡는 데 어떠한 실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앙에 대한 어떤 문제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때로 만나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논의하며, 서로의 입장을 들을 수 있지만 서로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를 확신시키는 데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나 의견이 서로 나누어져 이전보다 더 이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며, 잘못된 견해를 계속 견지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이 의견 분열로 인해 불쾌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심한 선입견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확신이 아니라 어둠이 증가하고, 진리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며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교인들이 최후의 심판 날 가장 위대한 심판자의 재판석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때, 그리스도의 생각과 뜻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논쟁이나 의견 차이가 없게 될 것이며, 진리의 증거가 분명히 드러나서 모든 논쟁이 끝나며 어느 주장이 옳은지가 영원히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나는 것은 죄인들의 양심에 빛을 비추어 각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죄의 심각성과 위험성, 율법의 엄격함, 죄인들의 생각과 행동의 악함, 죄인들이 받아야 할 큰 형벌, 죄인들에게 드리워져 있는 진노, 죄인들의 선을 행할 수 없는 무능함, 눈멀고 가난함, 무기력함 등을 죄인들에게 밝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종종 실패합니다. 목사들의 모든 권면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여전히 어리석고, 각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때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지막 만남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들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서 자신의 목회자였던 자들을 만나게 될 때, 각성되지 않은 양심을 가진 채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죄인들은 이전에 목회자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 하나님의 거룩과 죄를 미워하심,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 하나님의 율법의 엄중함,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 죄인들의 말할 수 없는 죄책과 비참 등의 진리에 대해 충분한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죄인들은 이 모든 진리에 대해 더 이상 무감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심의 눈이 완전히 밝아져서 다시는 눈먼 상태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양심의 입이 열려서 다시는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들이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교인들을 만나는 것은 교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적용해 주며, 교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를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지금 목회자들은 자기 교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분별하는 데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최선의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실수가 생길 수 있으며 종종 실수하기도 합니다. 교인들도 자기 목사의 상태나 서로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큰 위선자가 탁월한 성도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비난받고 사랑이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의 보석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도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로 있는 사람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귀중한 성도요 존귀한 자녀라고 생각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종 자신은 행복하고 안전한 상태에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은 참된 성도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성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신실하게 선포되는 회중 가운데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분명하게 진리를 전달하고, 하나님 말씀의 교리와 법칙들을 청중의 영혼에 가장 분명하게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심판 날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그 때는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며, 모든 사람의 상태가 완전하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드러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심판 날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속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기만과 자기 기만을 기초로 한 위선자들의 헛된 소망은 영원히 끝장 날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모든 사람이 서로의 영혼의 상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교인들은 자기 목회자가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고, 목회자들은 모든 교인의 상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가 누구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는지, 또 누구에게는 죽음의 향기가 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만나 교회 문제를 토론하며, 운영해 나갈 때, 특히 논쟁이 벌어지는 상태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과 견해를 비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리와 목적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판단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크게 잘못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날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날 때는 참되고 완전한 빛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동했던 원리와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잘못과 모든 부당한 비난이 끝장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지금은 종종 교인들을 만나 영원하며, 불변하여, 보이지 않는 왕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시키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심을 확신시키며, 미래에 있을 상급과 형벌에 대해 가르칩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합니다. 그리스도는 심판 날 자기 백성에게 가장 위대한 하나님이며 구주요 재판관으로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실 것이며, 큰 영광 가운데, 거룩한 천사들을 대동하고 가장 분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심판 날 교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에 대해, 미래의 재판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들으려고 모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지상에서 함께 모였을 때 들었던바 재판관이며, 위대한 왕이시며, 큰 영광과 위엄을 가지신 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만날 때는 서로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는 수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적 예배에서 하나님께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에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를 다하지도 않으며, 자신들이 모이는 목적에 대해서도 모르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심판 날의 만남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부주의한 마음이 있거나 졸거나 자신들이 모인 목적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교인은 그리스도께 듣게 될 것들에 대해, 또는 그들이 이전에 그리스도께 듣거나, 목회자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해 들었던 것에 대해 주의를 집중할 것입니다. 또한 교인들은 목회자가 재판관 앞에서 자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심판 날 그리스도의 재판석 앞에서 현재 서로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미래에 만나게 될 방식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2. 이제 저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목적으로 만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고하기 위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그리스도가 교인들에게 파송하신 그리스도의 종이며 심부름꾼입니다. 목회자들이 자기 사역을 마쳤을 때,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 자기가 행한 일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받았던 대접들을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 14장 16~21절에서 큰 잔치에 참석할 손님을 초대하러 주인에게 보냄 받은 종이 자기 일을 마치고 주인에게 돌아와 자기가 행한 일과 받은 대접을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주인이 화가 나서 종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냈을 때, 역시 종들이 돌아와 주인에게 자신이 행한 일을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3장 17절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역자들에 대해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같이 하는 자” 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앞에서 말한 누가복음 14장에서 사역자들이 자기 주인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 일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대접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하는 큰 날에 자신의 교인들 앞에서 이 두 가지 모두를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즉 목회자와 교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재판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목회자는 그 때 자신을 잘 영접하고 자신이 사역을 잘 하도록 도왔던 성도들에 대해 기쁨으로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은 그 날에 목회자들의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목회자들은 자신과 그리스도께 받은 자신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지 않고, 목회자들에게 나쁘게 대했던 성도들에 대해서도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이런 성도들을 지상에서 하던 것처럼 그들에게 위로하고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해 증언하며, 그들의 재판관이요 그리스도의 보좌관으로서 그들을 정죄하기 위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교인들은 그 날에 일어나서 자기 양들의 영혼의 유익보다 자기 이익만 추구한, 악하고 신실하지 못한 목회자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둘째, 심판 날 지상에서 서로 분쟁했던 목회자와 교인들은 그리스도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그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에 대해 판결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큰 의견 차이와 논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다른 어떤 인간 관계에서보다 더욱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어떤 다툼보다 여러 면에서 가장 불행하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주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이런 분쟁이 생깁니까? 교인들은 목회자와 때로는 교리적인 문제로, 때로는 교회 행정적인 문제로, 때로는 사례비 문제로 다툽니다. 때로 이런 다툼은 아주 오래 지속됩니다. 때로 이런 다툼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합리성보다는 어느 한 편의 주도적인 이익에 따라 해결됩니다. 때로 이런 논쟁은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 날 충분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결정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무한한 빛과 진리와 공의의 원천이신 오류가 없는 재판관께서 논쟁하는 양편을 심판해 주실 것이며, 진리가 무엇이며, 누가 옳은지, 누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는지를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은 반드시 함께 마지막 날 재판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이 인간 세상에 있었던 모든 분쟁을 결론짓고, 모든 실수를 바로 잡으며, 모든 불의한 재판과 오류와 혼란을 종식시키는 위대한 날이 될 것입니다.

 

 

셋째, 논쟁하던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반드시 함께 만나 서로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 세상에서 서로에게 한 행동에 따라 재판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판결과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재판을 집행하실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교인 사이를 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무엇이 옳은지를 선언하시며, 옳고 신실한 자를 인정해 주시며, 불의한 자를 정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과 심판은 완전한 진리와 공의에 따라 시행될 것입니다. 신실한 목회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승리한 자들에 대해 다니엘 12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로 비취리라.” 또한 신실하기는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 대해 이사야 49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또한 목회자를 잘 영접하고 잘 대접하여 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4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신실한 교인들과 신실한 목회자들은 서로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을 악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심각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4~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또한 신명기 33장 8~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꺽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한편, 신실하지 못한 목회자는 가장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에스겔 33장 6절과 마태복음 23장 1~3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심판 날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재판이 집행될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재판받기 위해 함께 만나 자기뿐 아니라 다른 편이 재판받는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 날의 목적은 로마서 2장 5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에게 행해지는 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교인들에게 행해지는 재판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인들도 재판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자신의 목회자들이 재판을 받는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의 분쟁이 영원히 해결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선고받고 보상받을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원한 부끄러움과 고통을 받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3. 이제 왜 하나님이 서로 분쟁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심판 날 이러한 방식과 이러한 목적으로 함께 만나게 하시는지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는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선악간의 모든 비밀스러운 일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공적이거나 사적인 인류의 모든 행동은 마침내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서 오류가 없으신 재판관께 최종적으로 판결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합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중요한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는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지상의 가장 큰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목회자들이 목회를 어떻게 하느냐,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을 어떻게 영접하며, 어떻게 대접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이거나 사적인 어떤 일시적인 인간 관계보다 인간이 창조된 위대하고 최종적인 목적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가 재판받아야 하며 진리와 공의로 공적인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주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목회자와 교인들은 전지하시고 오류 없는 재판관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상호 관계는 심판 날과 관련된 중요한 일에 특별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재판관으로 나타나실 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의 심부름꿑이며, 그리스도가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 가운데 행하는 직무와 사역은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께 돌아가 자기의 사역 결과를 보고하는 것은 아주 합당한 일입니다. 왕은 그의 모든 신하들의 재판관이며, 신하들은 모두 그에게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왕의 사역자들이 왕국의 일을 위해 특별히 임명받아 어떤 특별한 임무로 파송받았다면 반드시 왕에게 돌아와 자기가 행한 일과 자기가 받은 대접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마지막 날 재판관으로 나타나실 분의 심부름꾼일 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이 받은 사명과 직무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하는 사역은 심판 날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판 날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완전하게 세우는 것이며, 이와 관련된 모든 일을 정리하며, 그리스도의 나라에 해가 되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확정되어, 위대한 왕이신 그리스도가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가 심판 날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하는 사역이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도록 하며 영원한 심판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판 날은 이러한 목적으로 정해진 날이며, 공적으로 사람의 영원한 상태가 결정되어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확정되고 완성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형벌과 가장 완벽한 비참이 확정되는 날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가 심판 날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목회자들의 사역이 이 심판 날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목회자들을 교인들에게 보내신 것은 심판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교인들에게 경고하여, 심판 날 악인에게 선고될 두려운 정죄를 미리 경고해 주고, 의인들에게 선고될 복을 미리 알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죄인들에게 닥칠 진노를 피하며, 성도들에게 주어질 보상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가 심판 날과 아주 관계 깊기 때문에 목회자와 교인들의 상호 관계가 심판 날 거론되며 확정되는 것은 아주 합당한 일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런 목적으로 심판 날 위대한 재판관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토대로 여기 지금 제가 목회 가운데 돌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최근 일어난 일로 우리가 분리되고, 서로의 입장 차이에 대한 관계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 몇 가지 조언을 주려고 합니다. 또한 심판 날 위대한 심판대 앞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해 주려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에 있을 가장 엄숙한 만남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합당합니다. 최근 생긴 일로 우리에게 영원한 분열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집에 모였습니까? 제 목회 가운데서 돌보아야 할 귀중한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얼마나 자주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가르치고, 조언하고, 경고하고, 지시하며, 여러분에게 성례를 집행했습니까?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렘 25:3)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백성 가운데서 사역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삼 년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저는 제 자신을 예레미야 선지자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레미야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23년 동안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제가 이 교회 목회자로 부임한 것은 23년 전 2월 15일이었습니다. 그 때 이후 저는 이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해 왔습니다. 비록 힘이 미약하고, 언제나 몸이 약한 상태에서 섬겨 왔지만, 저는 힘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 영혼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43장 13절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라고 말한 바와 같이 저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제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과 힘을 쏟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사역했는지는 여러분이 저의 증인입니다. 저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외적 지위를 상승시키거나 저나 저희 가족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세상적이며 일시적인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목회 사역을 감당했으며, 밤낮으로 노력하며,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그리스도가 맡겨 주신 이 위대한 사역을 잘 감당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저는 목회 사역이 아주 위대한 일이며, 많은 수고와 노력과 어려움이 동반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목회의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목회 사역의 무거운 짐은 제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부르셔서 이 짐을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도와 주셔서 제가 이 무거운 짐에 깔리지 않도록 해 주시며, 하나님의 능력이 저의 약함을 통해 드러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제가 종종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았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에 대한 저의 목회 사역은 끝났습니다. 즉 여러분이 공적으로 저를 거절했으며, 이제 제가 여러분을 섬길 기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목자장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서로 만나야 할 시간을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그 때 저는 제 청지기직에 대해, 제가 여러분을 섬겼던 일과, 여러분에게 보냄 받았던 제가 여러분에게 받았던 대접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저에 대한 여러분의 행동에 대해, 23년간의 제 목회 기간에 여러분이 이룬 진보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함께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수 없고, 공정하며, 영원한 판결이 우리에게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났을 때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에 대해 판결해 주실 것입니다. 안식일이나 평일에, 하나님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행했던 모든 것에 대해 판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 생각의 목적과 동기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분열되어 논쟁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공평하게 재판해 주실 것이며, 우리가 그러한 논쟁에서 서로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조사하여 판결해 주실 것입니다. 감추어진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알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심과 영광이 충만한 빛으로,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조사하실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가 분명하게 나타나 감춰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모든 오류, 거짓, 불의가 공개되고, 모든 속임수가 밝혀지며, 모든 그럴 듯한 핑계와 트집과 거짓된 추론들이 그 날의 빛을 감당하지 못하여 한순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그 때에는 우리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교회적인 논쟁과 다툼을 할 때,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 행동의 원리가 무엇인지, 우리 성향이 무엇이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주 불행한 상황과 결과를 가져온 지난 교회적 분쟁에 있어 제가 바르게 행동했는지, 참으로 양심적으로 행동했는지, 위대한 주님이시요 주인이신 분께 조심스럽게 의무를 다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지난 분쟁 때 드러났던 분노가 정당했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자격조건에 대해 벌였던 큰 논쟁이 샅샅이 조사되고 판결되어 그 전모가 분명하고 완벽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22장 13절에서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 교리를 선포함에 있어서나, 이 교리에 맞게 행동함에 있어서나, 이 사건을 통해 제가 일반적으로 행동한 것에 있어,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롭게 보이기 위해 제 자신의 어떤 일시적 이익이나 명예심이나 욕심에 영향을 받았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혹은 제가 어떤 악하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행동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제가 주님이시요 주인이신 분의 뜻에 맞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행동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감히 주님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려고 했으며,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치우치지 않고 오랫동안 부지런히 기도하면서 탐구했습니다. 끊임없이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잠잠히 기다리면서 제가 지금 확신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성급하게 진리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결정은 일시적인 제 이해관계에 좌우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모든 반대 의견을 검토해 보고 결정을 내리는 동안 오랫동안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고통과 슬픔의 바닥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여러분이 목회자에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무를 다했는지, 바른 태도와 자세를 보여 주었는지, 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가르쳤던 내용에 대해 여러분이 듣고 분별하는데 있어 정당하게 했는지, 제가 여러분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접을 받았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 논쟁 기간에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과 모든 단계에 있어 공의와 사랑과 기독교인다운 예의를 지켰는지 아니면 얼마나 이러한 것들이 무시되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 사건에 있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과 우리의 마음 자세가 조사받고 밝혀질 것이며, 우리의 양심은 분명하고도 크게 말할 것이며, 우리는 모두 확신하게 되고,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실수나 잘못 전달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일이 영원히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논쟁은 이제 이 세상에서는 여러분과 저 사이에 끝이 났습니다. 지난 주 제가 이 교회에서 해임됨으로써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저 위대한 심판 날 반드시 다시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 날은 올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과 저는 위대한 심판대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문제를 그 날로 넘기며, 이제는 그것을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계속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 우리 가운데 있는 경건한 신앙고백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재판장 앞에서 여러분의 목사였던 사람과 반드시 만나게 될 그 큰 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때때로 설교를 통해 온 힘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분명한 방식으로 이러한 법칙들과 표지들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거짓된 위선자를 막고, 진실한 신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은 기만당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백 명의 신앙고백자 가운데서 한 사람도 기만당한 사람은 없다고 가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보살피고 책임지며, 살피고 조사할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목회 기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말했던 법칙을 기억하고 신중히 고려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우리 재판장 앞에서 반드시 함께 만나게 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때 여러분이 저에게 들었던 검사 기준들을 다시 듣게 될 것이며, 심사 기준이 다시 적용될 것입니다. 또한 그 기준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공정하게 그 기준을 여러분에게 적용했는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오류가 없는 심판자께서 여러분과 저를 검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도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속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가졌다고 주장하든지 간에, 심판 날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은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더 많은 지식과 영혼의 문제에 대한 더 뛰어난 지식과 목회에 대한 더 좋은 기술을 가진 목회자가 오기를 빕니다. 새로운 목회자의 설교가 더욱 깊이 있고 설득력이 있어서 제 설교에는 재빨리 자신을 속였던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서 눈이 밝아져 심판 날이 오기 전,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빕니다.

이후로 여러분이 자기를 점검하고 바른 교훈을 얻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될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시간은 짧으며,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있어 실수를 교정할 여러분의 기회는 곧 끝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크게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세월 동안 지속되었던 제 목회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때는 오고 있으며 곧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저를 여러분의 영적 아버지로, 여러분에게 가장 큰 유익의 도구로 인정해 왔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심판자 앞에서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십시오. 그 때는 여러분이 저에게서 영적인 자녀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았는지, 여러분이 저를 영적인 아버지로 합당하게 대접했는지를 조사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큰 의무가 있는 것처럼, 영적인 아버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적인 자녀들의 회심과 영원한 구원에 대해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 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이제 그리스도 없이, 은혜를 받지도 못한 채 있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온 세상의 재판장 앞에서 반드시 만나게 될 저 엄숙한 날을 진지하게 고려하십시오.

 

 

제가 여러분과 헤어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을 슬픈 환경 속에 남겨 두고 떠난다는 점에서 아주 슬픈 헤어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영원한 비참과 저주의 선고 아래 있는 여러분을 남겨 두고 떠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안전한 피난처와 안식처에 있는 안전하고 복된 상태로 남겨 두고 떠난다면, 우리의 헤어짐은 위로와 행복이 넘치는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저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외국인과 나그네요, 죄와 사탄의 비참한 포로요,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죄수이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상태로 남겨 두고 여러분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경고하며, 여러분의 위험한 상태를 알려 주었음을 여러분의 양심은 증거할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여러분의 양심을 깨우며, 세월을 아끼며, 다가올 진노에서 신속하게 피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알려 주며, 여러분이 안전하게 대피할 방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저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만한 것을 부지런히 찾아 내어 여러분에게 사용해서, 여러분이 자신의 평강과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설득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움직여 각성되도록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저는 힘을 다해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 대해 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 6장 29절이 오늘 저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줍니다. “풀무를 맹렬히 불며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하나니.” 여러분을 섬기는 저의 모든 노력이 여러분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또한 제가 설교했던 말씀을 여러분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여러분에게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향기가 될까 두렵습니다. 여러분은 심판 날에 여러분의 생애 동안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돌보았는지, 과거와 미래에 은혜의 수단을 어떻게 증진시켰는지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어떻게 될지, 지금부터 여러분이 어떤 수단을 채택할지, 어떤 유혹에 직면하게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크신 자비를 베풀어서 지난 수단들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미래에 사용할 수단은 성공하게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망치가 되어 여러분의 돌 같은 마음을 산산이 부수게 되기를 빕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과 헤어지면서 여러분이 제 목회 기간에 들었던 경고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심판 날 만나게 될 때, 그 때 여러분은 제가 했던 경고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의 이 전 목회자였던 나를 보고서 내가 했던 말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말입니다 오! 그렇지만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제일 먼저 강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세상에서는 서로 헤어집니다. 그러나 심판 날 만남 이후에는 서로 헤어지지 않도록 합시다. 만일 제가 여러분의 신실한 목회자였다면, 저는 무죄로 인정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이 영원히 저와 헤어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최선을 다하십시오. 지금 저와 여러분이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이별입니다. 그러나 심판 날 여러분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지금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픈 이별이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우리의 헤어짐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헤어짐으로 많은 슬픔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날 헤어짐은 가장 크고 깊고 치명적인 슬픔을 여러분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지금 약간 각성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많은 회중 안에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없는 상태에 있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혼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하고 부주의한 상태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약간의 각성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을 떠나려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여러분에 대한 관심이 더 생깁니다. 여러분의 현재 마음 상태가 어떤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만나게 될 때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날에 대해 많이 생각하십시오.

 

 

지금 제가 이 양무리를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전에 주었던 조언을 주고자합니다. 회심 문제에 철저한 관심을 가지고 열심을 내십시오. 뒤로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붙잡으십시오. 이 교회와 회중 가운데 생긴 이 큰 변화가 여러분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이런 시기에는 큰 유혹이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마귀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여러분의 현재의 확신과 노력을 무효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두 배나 부지런히 깨어 기도하십시오.

 

 

앞으로 누가 여러분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든지 간에 가장 위대한 목자 장께서 여러분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을 인도해 주시며, 무한한 빛의 원천이신 분께서 “여러분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해 주시기를” (행 26:18)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 심판 날 우리의 심판자 앞에서 제가 여러분을 다시 만날 때, 우리가 기쁨으로 만나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내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마을에 와서 목회를 시작한 이래, 저는 젊은이들의 영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젊은이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회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젊은 시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며, 미덕과 경건의 삶을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제게 특별한 기쁨이었습니다. 만일 젊은이들이 함께 모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화를 하며, 부도덕과 경박함과 낭비를 거부하며, 분명하게 미덕의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면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마을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바라던 바였습니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 악과 허영과 무질서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제게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저는 전에 우리 교회 젊은이들 사이에 악이 성행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이 일이 젊은이들에게는 큰 공격이 되어 이 일로 많은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유익을 위해 한 것이지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참된 명예와 행복을 가지기를 원했으며, 책망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참된 미덕과 신앙은 젊은이들에게 영광과 행복과 큰 평안과 번영과 최고의 위엄과 영예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유익을 추구해 왔지만 이제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저를 여러분과 헤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도록 제게 맡겨 주신 분께 여러분의 영혼을 다시 맡깁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를 무시하지 않고,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했던 조언과 경고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제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다시 간절히 부탁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얼마 있지 않아 죽어서 위대한 심판자 앞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때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쳤던 것이 진실인지, 제가 여러분에게 주었던 조언이 유익한 것인지, 제가 참으로 여러분의 유익을 추구하였는지, 여러분이 제 노력으로 잘 성장했는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때로 이 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좋지 않은 자유분방한 행동들을 진심으로 경고해 왔습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그러한 자유분방한 행동과 습관을 정당화하고 그러한 행동에 경고하는 것을 조롱한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여러분과 헤어지면서 그러한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 경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그 날에 하나님이 저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해 주시고 확증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양무리 가운데 어린 양, 제가 오랫동안 돌보아 왔던 어린이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방금 제가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린이들을 제외시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은 젊은이며, 젊은이 중의 젊은이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소중한 기회가 많이 있다면, 어린 젊은이인 어린이들에게는 여러 면에서 더욱 특별한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린이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실한 목자로서 양뿐만 아니라 어린 양도 잘 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린이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여러분을 가르치고, 때때로 여러분에게 경고했는지를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얼마나 자주 이런 목적으로 여러분과 함께 모임을 가졌는지를 알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때로 제가 전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에게는 전혀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있게 될까 봐 염려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떤 실제적인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일어나야 하며, 여러분이 철저히 여러분의 죄와 비참에 대해 깨달으며, 죄의 심각한 악을 보며, 죄를 슬퍼하며, 무엇보다 죄를 미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한 감각이 생기며, 여러분의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며,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을 더욱 즐거워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없다면 저는 여러분을 비참한 상태,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한 상태, 두려운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비참의 구덩이로 여러분이 들어가고 있는 위험한 상태에, 있는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러분과 작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 더 해 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했던 조언과 경고, 제가 여러분에게 했던 노력을 잊어버리지 말고 종종 생각해서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악한 세상에 두고 떠납니다. 이 세상에는 함정과 유혹이 많습니다. 하나님만이 여러분이 어떻게 될지를 아십니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는 구원받는 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어린이가 장성하기 전에 죽습니다. 장성한 사람 중에도 구원받았다는 증거를 보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며,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고, 여러분의 영혼의 유익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을 제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고,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자가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꺼리는 사람들 편에 서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끊임없이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종종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과 그 날 여러분에게 자주 조언하고 경고했던 여러분의 목회자를 거기서 만나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이제 여러분 모두에게 이 교회와 교인들의 미래의 유익과 번영을 위해 아주 중요한 몇 가지 특별한 것을 짧게 조언함으로써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2. 여러분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할 때,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한 가지는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이 못지않게 중요하며,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중요합니다. 모든 성도의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통제받고 다스려져야 합니다. 가정 교육과 가정 질서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들입니다. 만일 가정 교육과 가정 질서가 무너지면 다른 모든 수단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가정 교육과 가정 질서가 합당하게 유지되면, 모든 은혜의 수단은 번성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동안 저는 종종 여기 있는 가장들에게 자녀를 교육하고, 경고하고, 지도하는 데 큰 힘을 쏟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교회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반복하며 간절히 촉구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일찍 시작하십시오. 지속적으로 부지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교훈과 조언이 효과적이 되면 틀림없이 가정의 질서가 잡힐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가정의 신앙과 도덕을 지켜 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녀를 꾸짖기는 했으나 자녀들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했던 나이 많은 엘리 제사장처럼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엘리가 제대로 가정 교육을 하지 못함으로 자기 집안에 재앙을 불러들인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들은 여러분에게 저주가 아니라 복을 물려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무책임하고, 불순종적이며, 무질서한 행동보다 사람에게 더 큰 화를 불러 오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장차 이 마을이 번창하기를 원한다면, 분쟁을 피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논쟁적인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처음 이 교회 목사로 부임한 이래 여러분 사이에 있었던 논쟁들은 목회 기간에 내가 짊어진 가장 큰 부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나와 논쟁한 것만이 아니라 토지나 다른 문제에 애해 여러분 사이에 논쟁한 것을 말합니다. 논쟁, 투쟁심, 악담과 같은 것들은 기독교 정신에 직접 위배되며, 특히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제한시키며, 모든 은혜의 수단을 비효과적으로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외적인 위로와 평강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잘 되기를 원한다면 이후부터 투쟁정신을 경계하십시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여러분 가운데서 있었던 가장 큰 논쟁인 최근의 성찬식 논쟁이 여러분의 마지막 논쟁이 되게 하십시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3장 11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 기회를 통해 특히 최근 논쟁에서 나의 입장을 지지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에 대한 모든 쓴 마음을 버리십시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이 유혹받을 소지가 가장 큽니다. 왜냐하면 최근 일어난 일들로 여러분의 유혹받을 소지가 가장 큽니다. 왜냐하면 최근 일어난 일들로 여러분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무리 잘못되었더라도 여러분은 아주 부지런하고도 조심스럽게 성도의 온유함과 평온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다른 입장에 섰던 사람들을 이런 면에서 능가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승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분쟁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떠한 복수심도 갖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러한 복수심이 생기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고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모든 수단을 가지고 이 마을이 잘 되기를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십시오. 어떤 집단에 있거나,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지 간에 모든 사람을 진지하고, 따뜻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하십시오. 또한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들과 그리스도의 나라와 대의에 친절하게 대하든지 아니면 불친절하게 대하든지, 정당하게 대하든지 아니면 부당하게 대하든지 간에 그렇게 하십시오.

 

 

이 마을의 미래의 번영과 큰 관련이 있는 또 다른 것은 오류가 침입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알미니안주의와 알미니악적인 성향을 띠는 잘못된 교리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상당수는 약 16년 전에 이러한 부패의 원리들이 확신되는 위험에 많은 경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의 위험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위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오늘날 알미니안주의 교리는 그 때보다 더욱 확산되어 있습니다. 최근 7년 동안 알미니안주의는 여전히 이 땅의 거의 모든 곳에 침투하고 스며들고 있으며, 복음의 영광과 참된 경건의 교리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여러분 가운데서 이러한 교리에 상당히 노출된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나이 많은 분은 자신은 강하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성경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2).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조심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젊은 세대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크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알미니안 교리는 부패한 본성에 아주 잘 들어맞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마음을 잘 지키지 않으면 쉽게 이 교리에 물들 수 있습니다.

 

 

만일 알미니안 교리가 예전에 오랫동안 신앙으로 유명한 다른 큰 마을에 최근 번진 것처럼 우리 마을에 크게 번진다면, 그것은 장차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영원한 피해를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복받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제가 여러분에게 조언하는 또 다른 것은 기도에 더욱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과 번영의 원천이시며, 복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개인 기도, 가족 기도, 교회에서의 공적 예배시의 기도를 끊임없이 할 뿐만 아니라 사적인 기도 모임에도 참석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요셉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이 마을의 재난을 민감하게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최근의 논쟁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지 종종 함께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이 그들 자신과 이 마을과 이 나라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기를 당부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고 싶은 마지막 조언은 여러분이 이 교회에 부임할 목회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첫째, 그가 철저하고 건전한 교리를 견지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교리적으로 부패한 시대에는 이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건전한 이러한 목회자를 모시기 위해서 여러분은 아주 주의 깊고 신중해야 합니다. 저는 위험을 압니다. 저는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부패한 신학을 견지하면서도 감추며, 그렇지 않은 양 변장하는 방식을 압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며, 자신의 신용을 유지하며, 다른 사람의 신임을 받으며, 자신의 이익을 지켜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자신들의 부패한 교리를 더욱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선전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진지한 신앙과 불타는 경건을 소유한 목회자를 청빙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목회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참된 경건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특히 특정한 시기나 마을이나 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특히 교리와 윤리에 이처럼 심한 부패가 있는,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목회자가 더욱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젊은이들을 보호해 주고,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차원적이고 신비하고 복음적인 교리와 참된 체험적인 신앙을 부정하는 오류와 편견에 성공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참되게 경건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마을에는 특히 이러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방법에 대해 참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참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체험적으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목회자를 모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목자 없는 양 같은 위험에 노출될 것입니다. 여기 이 마을에 필요한 목회자는 몸으로 막아서서 울타리를 치기에 아주 능한 사람이어야 하며, 이스라엘의 병거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대의와 경건의 능력에 챔피언이 될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주고 싶은 중요한 조언을 간단하게 모두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을 떠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의 불멸의 영혼을, 이전에 여러분의 영혼을 나에게 맡겼던 분에게 다시 의탁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이신 그 분 앞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제가 특별하게 목양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를 결코 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신실한 목회자를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목회자가 주님의 마음과 뜻을 잘 알고, 죄인들에게는 철저히 경고하며, 신앙고백자들의 고백을 지혜롭고 능숙하게 잘 분별하며, 여러분을 영원한 복의 길로 인도하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불타는 빛이 되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잠시만이 아니라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기뻐하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찬식과 관련된 회원권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요동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평화롭고 신실한 신앙을 지키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도할 때마다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리 모두 미래 즉 우리 주님의 큰 날에 우리가 엄숙하게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맙시다. 그 날은 오류 없는 결정과 영원하고 변개할 수 없는 선고가 내려지는 날입니다. 아멘.

 

출처:"조나단 에드워드 설교집" 심판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