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연구/로마서

토기장이 하나님(롬9:17-29)

금빛돌 2020. 12. 26. 20:40

바울은 로마서 8장까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큰 근심이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큰 근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절대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가 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6절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6절 하반절에 6--이스라엘(혈통적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선택받은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즉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모두 택하신 백성으로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직계 아들들 가운데서 인간의 혈통으로 태어날 수 없는 이삭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되었습니다.

또 이삭의 자녀가운데서 야곱만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삭의 자녀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에서를 버리시고, 야곱만을 사랑하심으로 택하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태중에 있을 때입니다. 태중이란 그들이 그 어떤 선이나 악도 행하지 않은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불의한 것처럼 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누구는 선택하시고, 누구를 버리시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대해서 의롭지 못한 분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롬9:15절과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구원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여기서 보시면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경은 출애굽기 916절입니다.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사도바울은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영국에 계시는 이중환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영국교회는 마치 거의 침몰하기 직전의 타이타닉호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10프로 정도가 믿는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영국에서 기독교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 성경이 읽어지네의 저자이신 이애실 사모님도 영국에 가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계시는 목사님이 사모님에 너무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변하지 말아야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약 66권의 성경만이 기록된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 즉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일이란 무슨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괴롭힌 일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출912절에서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는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선택과 반대로 유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닌 사람은 마음이 완악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이유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택하신 백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이스라엘백성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재앙이 사라지만 바로는 금방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은 바로에게 더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바로가 가장 아끼는 아들까지 죽이시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때서야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기로 선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반대로 버리시기로 선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구원)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유기)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버리신 백성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닌 사람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큰 재앙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앙이 사라지만 금방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눈에 보이는 재앙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모두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렇게 바울이 말을 하니까 또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누구는 구원받기고 선택하고 누구를 버리시기로 선택하신 하나님에게 허물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허물이 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대해서 하나님이 허물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구 그 뜻을 대적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선택에 대해서 반문을 제기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냐 말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21절입니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22절입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하게 하고자 하기 위해서 멸하시기로 준바하신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런 자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진노하시기 위하여 준비된 그릇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기 위하여 준비하신 자에 대해서 당장은 심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멸하시기 위하여 준비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관용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멸망받기로 준비된 자라 할지라도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을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땅에 살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는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십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관용하십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멸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택하신 백성에 대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3절입니다.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로 예비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풍성함을 보여주십니다. 또 날마다 더 풍성하게 보여십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로 예비하신 자들입니까? 24절입니다.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은 우리입니다. 곧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르신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 부르셨습니까? 25절입니다.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호세아 22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는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심으로 부르셨습니다.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10222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자만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9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도 이사야 1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절대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은 자란 이스라엘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서 심판을 받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자들입니다. 이들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사실 택하심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지 않으셨는가? 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는가? 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택함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없이 평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런 자에 대해서도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해를 비추어주십니다. 또 이 땅의 자연적인 은총들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러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의 완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만을 구원하신다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의 말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혹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의 도마 위에서 논쟁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경배와 찬양의 대상입니다.

무엇보다 택하심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은 오직 감사와 찬송과 경배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선택의 말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선택받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하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 그는 감옥에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도 이방인과 유대인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에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에베소서를 쓰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고 합니다. 이 찬송이 14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도 이 한해를 바라보면 인간적으로는 감사하거나 찬송할 제목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조건이나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사랑해주셨습니다. 사랑해 주심으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구원받기로 선택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아주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격한 가슴으로 감사하시고 찬송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