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연구/이사야

그리스도의 통치와 평화의 나라2(사11:4-10)

금빛돌 2020. 10. 16. 19:02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7장부터 12장까지는 북 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유다 나라를 쳐 들어오려고 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남 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아하스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의 나라는 절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왕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1-7절에서 장차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사11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나라와 인간 왕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가운데서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절대 이 세상의 나라와 왕에 대해서 절대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정부에 대해서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보수다 진보다 해서 교회에서 조차도 아주 민감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정치적인 문제로 절대 싸우거나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진정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사모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다윗 왕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왜 예수님은 다윗 왕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온다고 하지 아니하시고, 이새의 줄기와 뿌리라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새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오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 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우리의 왕이시지만 이새의 집안에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왕이시지만 예수님께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에서 낮고 낮은 우리를 위로해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새의 집안에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절대 혼자가 아니셨습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님에게 강림하셨던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에게 임하셨던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시는 분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3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시면 귀에 들리는 대로 우리를 판단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예수님은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의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공의로 절대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아니하십니다.

/가난한 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신다고 하니까 마치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 대해서 벌을 내리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가난한 자라도 예수님께서는 바르게 판단하시고 평가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보면 가난과 부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도를 통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1: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이것을 쉬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1:9 만일 가난하거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영적인 부자로 만드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1:10 만일 부하거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적인 부족함을 보여 주신 것을 자랑하십시오. 그것은 부자도 들에 핀 꽃과 같이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고 판단하십니까?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난하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부자로 판단하시고 평가하십니다. 또 부자에 대해서는 육신적으로 부자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가난한 자로 판단하시고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왕으로 지금도 우리를 어떻게 다스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가난하다고 해서 절대 차별하거나 무시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자가 되게 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겸손한 자를 바르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더 낮추고 겸손하게 행하면 그 사람을 더 짓밟습니다. 더 무시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절대 사람들에게 약하게 보이면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 있는 자처럼 보여야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자를 바르게 판단하시고 평가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겸손한 자를 높여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의 막대기는 예수님의 말씀의 막대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의 교만한 자를 치십니다. 또 그의 입술의 기운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의 악인을 죽이십니다.

5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띠와 몸의 띠는 모두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공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에는 성실하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실하심이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함이 없는 꾸준함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시고 꾸준하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공의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시고 꾸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 대해서 어느 한 순간도 변함없이 꾸준히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공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의 정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절대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를 평가하시거나 판단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의와 정직으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겸손한 자에 대해서 반드시 들어주시고 높여주신다는 사실을 더 굳게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물리쳐 주시고 죽이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대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절대 이 세상은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가난한 자가 무시를 당하는 세상입니다. 겸손한 자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또 악인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과연 지금도 공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지금도 공의의 예수님은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가? 라고 하는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떨 때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낙심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주와 세계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으로 지금도 이 세상을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언제 이런 예수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집니까?

이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6절에 그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그 날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날과 그때는 먼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재림의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그 때에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 때와 그 날은 예수님께 초림하실 때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때가 차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비로소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그를 그리스도와 이 온 세상의 주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통치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미 벌써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미 시작이 되었는데,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가난하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교만하고 악한 자를 물리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지금도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나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도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 땅 가운데 교만한 자 악한 자를 물리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온전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내가 누구보다 더 겸손하게 주님을 섬겼는데, 아직 내 삶 가운데서 나를 높여주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내가 누구보다 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내 삶 가운데 나를 형통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기도제목은 단순히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 삶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자녀의 삶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