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2(롬4:13-25)
롬 4장에서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예로서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의로 여기신바 되었습니다(3). “의로 여기다”라는 말은 “실상은 의롭지 않지만 의로운 자로 간주한다”란 뜻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만일 일하는 자가 삯을 받으면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4). 그런데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라고 여기심을 받으면 은혜이자 복입니다(6-8). 이 복이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을 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주어진 것입니다(9,10).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이 할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아브라함을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할례자의 후손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긴바된 것이 무할례시에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단순한 유대인 즉 할례자의 조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11).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 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라면 너무나 피곤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의로워져야 안심하겠습니까? 또 날마다 어떤 고행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얽어 메어야 편안하겠습니까? 이 모든 일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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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창 17장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내용입니다.
창17장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너와 너의 후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입니다.
또 이 말은 가족관계로 설명하면 “나와 너의 후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라”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서 세상의 상속자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재산을 상속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언약은 구원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왜 이 언약이 구원의 언약입니까?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탄의 자녀로 태어난다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자녀들인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아브라함을 시작으로 구원의 언약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구원의 언약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13절에서 아브라함이 구원의 언약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하나님의 자녀)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여기서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 즉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이라는 말은 “율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이라는 말입니다. 즉 만일 율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믿음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언약은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까?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에 도달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또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만일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인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16상. 그러므로 상속자(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그것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창 17장 1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00세의 아브라함과 불임여성인 사라 사이에서 후손이 태어난다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같으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100세가 된 아브라함과 불임여성인 사라 사이에 후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창17장 17절입니다.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여기서 아브라함이 엎으려 웃으며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웃으며 라는 말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이 말이 이츠학 즉 이삭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피식 웃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말하기를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창 17장 17절의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입니까? 아니면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입니까? 우리가 볼 때는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믿음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용기나 자신감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용기나 자신감이 없으면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창 17장 17절에 대한 해석이 바로 오늘 본문 롬 4장 19-2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자녀가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하나님의 자녀가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래서 여러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본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볼 때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왜 우리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것이 교만입니까?
우리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절망하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100세 때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인정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없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크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 믿고 신뢰하고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소망하던 사람들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우리가 그 사람들 때문에 크게 실망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렘17장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롬3장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래서 여러분 우리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실망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나는 할 수 없지만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시며 희망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처음에는 나는 할 수 없다고 해서 피식 웃지만, 나중에 이삭이 태어난 후에 활짝 웃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처음에는 피식 웃었지만, 나중에는 활짝 웃는 웃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