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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창9:18-29, 벧전4:8)

금빛돌 2018. 6. 9. 07:09

오늘 본문은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18절을 보시면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 홍수 이후에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노아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노아의 후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노아의 후손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고대로부터 한자 문화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 선()자를 보면 (배 주) + (여덟팔) + (입 구)입니다. 창세기 713절에 7: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자부가 다 방주에 들어갔고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여덟 식구가 한 배를 탓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고대 중국 사람들이 배 선자에 노아의 8식구를 넣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고대 중국 사람들도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류는 다 노아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노아의 세 아들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셈과 야벳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같은 노아의 후손인데, 두 가문 축복의 가문이 되고, 한 가문은 저주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셈과 야벳은 축복의 가문이 되었고, 함은 저주의 가문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덮어줌의 은혜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에서 포도주를 만들어서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막에 벌거벗은 채로 있었습니다.

이 노아가 어떤 인물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른하늘에서 심판을 준비하여 방주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하늘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랬던 노아가 술에 취하여 하체를 드러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노아의 실수에 대해서 함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22.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고라는 말은 그냥 실수로 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보고라는 말은 자세히 관찰하여 보고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주석가는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즐겼다고 합니다. 또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알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알렸다는 말은 단순히 알리는 정도가 아니라 해설하듯이 자세히 설명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었던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해서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이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술이 깬 후에 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내었던 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실수를 덮었던 셈과 야벳에 대해서는 축복을 합니다.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리고 이 노아의 축복과 저주가 역사가운데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함의 가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06절부터 20절까지를 보면 함의 자손들이 나옵니다.

109절에 보면 함의 자손가운데 니므롯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니므롯은 10:9.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란 여호와를 대항하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실수를 공개하고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함의 자손가운데, 하나님의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손들이 나왔습니다.

또 함의 자손가운데서 10절에 보면 바벨론이 나오고, 12절에 보면 앗수르가 나옵니다. 13절에 보면 블레셋이 나옵니다. 바벨론과 앗수르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멸망시킨 나라들입니다. 또 블레셋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대적했던 족속입니다.

또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을 압제하고 억압했던 요셉을 알지 못했던 애굽왕 바로도 함의 자손입니다(1:8).

또 함의 넷째 아들의 이름이 가나안입니다. 1015절에서 20절에 보면 가나안에게서 가나안의 족속들이 나옵니다(10:15-20). 1516절에 보면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죄악이 가득한 가나안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니까 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손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손들이 되었고, 또 죄악으로 가득 찬 자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당하는 자손들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셈의 가문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셈의 가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셈의 자손가운데서 아브라함이 나왔고, 이삭이 나왔고, 이스라엘이 나왔고,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자손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의 통로인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같은 노아의 후손이지만, 함은 저주받는 가문이 되었고, 셈은 축복받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노아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축복과 저주로 갈라지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덮어줌의 은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습니다. 함은 덮어줌의 은혜를 모르고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내고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저주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셈은 덮어줌의 은혜를 알아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셈이 어떻게 해서 아버지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줄 수 있었습니까?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어떻게 당대의 의인이 될 수 있었습니까? 노아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노아의 잘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술에 취에서 하체를 드러낸 것은 잘못이지만, 셈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아버지도 별수 없구나 역시 우리 아버지나 나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부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덮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동부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셈과 같은 축복받는 가정, 자손대대로 축복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덮어줌에는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첫째로, 덮어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구약시대 법궤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였습니다. 법궤 속에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공개하고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십계명이 있는 그 법궤위에 무엇이 있습니까? 법궤의 뚜껑인 시은소(施恩所)가 있습니다. 시은소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또 시은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찬송 209장이 옛날 찬송에서는 원래는 마지막에 시은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은소로 하고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1. 이세상풍파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나 편히 쉬게 될 곳은 주 예비하신 시은소 2. 그 향기로운 기름을 주 내게 부어주셔서 내 기쁨 더해 주는 곳 주 피로 사신 시은소. 3. 주 믿는형제 자매들 그 몸은 떠나 있으나 주 앞 에기도 드릴 곳 다함께 모일 시은소4. 내손과혀가굳어도 내몸의피가식어도 나영영잊지못할곳 은혜의보좌시은소 아멘입니다. .

그런데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십계명이 있는 법궤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법궤의 뚜껑인 시은소위에 피가 덮여져있기 때문입니다(카파르-덮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시은소위에 덮여져 있는 피로 인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죄인인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죄악 된 모습으로는 도무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위에 예수님의 피가 덮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위에 덮여져 있는 그 예수님의 피를 인해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셈은 아버지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셈과 그 자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제일 먼저 예수님의 피로 여러분들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의 허물과 부족, 실수를 서로 덮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셈과 함께 하셨듯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정에서 가족들끼리 서로의 허물과 실수를 드러내고 공개하기를 즐겨한다면 하나님은 그 가정과 함께 하시기 않습니다.

또 교회에서도 우리가 서로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서 공개하고 드러내기를 즐겨한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와 함께 하시기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에 서로의 허물과 부족에 대해서 서로 덮어준다면 하나님께서는 셈의 가정과 같이 우리 가정과 늘 함께 하십니다.

또한 교회에서도 서로의 허물과 부족에 대해서 서로 덮어준다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또 덮어줌에는 사랑의 은혜가 있습니다.

잠언 179절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에는 베드로전서4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은 베드로가 종말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쓴 말씀입니다. 왜 베드로가 종말을 앞두고 다른 것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할 것을 강조했겠습니까? 무엇보다 덮어주는 사랑을 강조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보여주신 모습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오셔서 네가 어떻게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할 수 있느냐, 나는 네가 과거에 한 일을 한 번도 잊지 않고 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과거의 일을 다 덮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의 모든 죄를 다 덮어주는 사랑을 하였는데,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덮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의 피로 덮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참 사랑입니까? 서로의 허물을 공개하기를 즐겨하며, 서로의 허물을 거듭해서 말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덮어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눈썹이 없는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를 눈썹이 없는 것을 숨기고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눈썹 문신이라는 것도 없어서 남편 몰래 매일 눈썹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부부는 연탄을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앞에서 끌고 아내가 뒤에서 미는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연탄재가 아내의 얼굴에 묻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다가와서 아내의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혹시 남편이 자신이 그린 눈썹을 딱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의 눈썹만 빼고 모든 것을 딱아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처음부터 아내의 눈썹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아내는 주루룩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남편은 그 아내의 눈물을 딱아 주었습니다. 저는 분명 그 가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잘 극복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실수를 덮어주는데 사랑의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으로 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모든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영혼의 발에 해당되는 부분이 매일 더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내가 너희 온 몸을 사랑으로 덮어준 것같이 너희는 서로 더러워진 발을 사랑으로 덮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찾아서 공개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규칙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면 죄고, 저것을 하면 죄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철저하게 그렇지 않은 채 위장하고 외식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도 죄가 있다고 모함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의가 이런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갈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입니다.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덮어줌으로 사랑의 은혜가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나올 때 자신은 그렇지 않은 채 외식된 모습으로 나오지 않고 서로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감싸주고 덮어주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덮어줌에는 용서의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셈이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다고 하는데, “덮다”(갓싸)라는 단어는 죄를 덮어서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32:1).

그래서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다는 말은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이 내게 용서를 빌어야 용서해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노아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아들들에게 용서를 빌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했습니다.

자녀가 실수하면 부모가 그 실수를 용서해 주어야합니다. 또한 부모가 실수하면 그 자녀가 용서해 주어야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용서는 용서받는 자보다 용서하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죄를 행하는 사람보다 그 죄를 용서해주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 배나 더 큰 화상을 입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면 서로의 허물을 끝까지 찾아내며 공개하는 자가 아니라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너희가 하나님을 믿느냐 그러면 너희는 급히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다 같이 따라하겠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용서입니다

서로 덮어줌으로 서로의 허물을 용서해주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로 덮어줌에는 축복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친정어머니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시집간 딸이 명절에 친정에 가서 돌아올 때 어머니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딸에게 주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친정어머니와 같이 우리에게 좋은 모든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홍수 후에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9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 모두가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은 열린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줄기를 넘치도록 풍성하게 내려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함과 같이 덮어줌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이 축복의 물줄기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과 같이 덮어줌의 은혜를 아는 자들에게는 창조 때부터 예비하신 풍성하신 모든 복들을 내려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함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준비하셨던 하나님의 축복의 흘려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계속 흘러가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계속 내려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셈과 야벳처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예비하신 하늘과 땅의 풍성한 모든 축복들을 이 땅에서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