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는 교회(롬15:1-13)

금빛돌 2018. 1. 5. 01:27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신 최인철 교수님은 우리 몸의 건강에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입니다. 탄수화물은 밥입니다. 또 단백질은 고기입니다. 그리고 지방은 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에도 행복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자유와 유능과 관계입니다. 첫째는 자유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면 그 영혼은 절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자유롭지 못한 채로 일을 하면 인간은 절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어떤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자발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두 번째는 유능이라고 합니다. 내가 무언가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잘하고, 또 그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때가 우리 영혼이 행복을 느낍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우리가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능함을 느낍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이 불행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 사람들이 나를 보고 너 그것밖에 하지 못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불행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영혼에 새로운 힘과 능력을 날마다 공급을 받아서 무엇이든지 내가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그 영혼은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이 행복을 느끼기 위한 세 번째 요소는 관계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우리 영혼이 행복을 느끼기 위한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유입니까? 아니면 유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관계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영혼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관계가 제일 중요한데,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이 관계입니다.

여러분들도 신앙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관계입니다. 이 관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사실 제일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포기는 경우는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로마교회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간에 관계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생각이 달랐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규례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에서 돼지고기와 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출신이 그리스도인들은 돼지고기든 무엇이든 어떤 음식이든 다 먹을 수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하실 때 누가 더 믿음이 강한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약의 규례대로 절대 돼지고기는 먹지 말고 채소만을 먹어야하는 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들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니까 무엇이든지 먹어도 된다고 하는 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들이겠습니까?

어떤 음식이든지 먹어도 된다고 하는 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로서 구약성경의 규례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런 의식적인 법들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다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성경의 규례를 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믿음이 강한 자들로서 로마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와 같은 음식을 절대 먹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이렇게 구약의 규례를 열심히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들 같은데, 사도바울은 이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로마교회는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강한 자들과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 간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엇이든이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강한 자들은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극심하게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41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141. 믿음이 연약한 자(채소만 먹어야한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채소만 먹어야한다 의견) 을 비판하지 말라 고 말합니다.

또 롬1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4:2어떤 사람(믿음이 강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유대인 그리스도인) 는 채소만 먹느니라

또 롬14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돼지고기를) 먹는 자(이방인)는 먹지 않는 자(유대인)를 업신여기지 말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유대인들)는 먹는 자(이방인)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여기서 보시면 돼지고기를 먹는 믿음이 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엎신여긴다는 말은 내 눈 아래로 깔본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돼지고기도 하나님이 주신 음식인데 왜 이 걸 먹지 못하나,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구약의 율법을 다 이루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왜 이 걸 믿지 못해, 정말 내가 보니까 너 정말 믿음이 없어, 한심해, 그것도 믿음이냐고 하면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의 눈 아래로 깔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돼지고기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깔보지 말라고 합니다.

또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유대인들은 먹지 않는 자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판한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판한다는 말은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저주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냐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구약의 율법을 무시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구원도 받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받으셨다는 말입니까?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또 돼지고기를 먹지 말아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께서 받으신 자들입니다.

이에 대해서 고린도 전서 8장에서는 또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약한 자들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입니다(고전8:11).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을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다고 해서 비난하고 무시하여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8:12).

또 롬14장에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깔보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나와 생각이 맞지 않다고 해서 형제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을 한다면 그 비판을 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 나와 생각이 맞지 않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형제들을 업신여기면서 내 눈 아래보고 깔본다면 그 사람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사도바울은 믿음이 강하여서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편에 서 있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사도바울은 믿음이 약하여 채소만 먹어야한다는 자들의 편에 서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강한 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바울은 그가 믿음이 강한 자라고 해서 믿음이 강한 자의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약한 자의 편에도 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양쪽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믿음이 약하여 채소만을 먹어야한다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 면서,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자들은 먹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는 돼지고기를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하느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신앙양심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즉 성경에서 명백하게 규정하지 않는 문제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동성애는 어떤 문제입니까? 동성애는 절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분명 동성애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는 성경을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교회가 내년 예산을 어떻게 세워야합니까? 교회 벽에 칠을 해야 하는데 어떤 색을 해야 합니까? 오늘 교회 점심메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도 성경적으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 도 있는 문제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의입니다. 여기서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또 하나님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평강 또는 화평입니다. 이것은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여 더 중요한 관계를 깨뜨린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돼지고기를 먹을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각자의 신앙의 양심을 따라서 생각해야합니다.

둘째, 자신의 신앙이 양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합니다.

세 번째, 각자 자신의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있지만, 공동체의 화평(사랑)을 더 우선해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결론적으로 어떻게 말합니까?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그래서 여러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비판하지 마시고, 더욱더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쓸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또 사도바울은 돼지고기를 먹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업신여겨서 그들을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이 강한 자들에 대해서도 오늘 본문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보면 바울 자신도 믿음이 강한 자에 속함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의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도 믿음이 약한 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의식법이 다 이루어졌는데, 아직 구약의 율법에 메여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자 라고 합니다. 여기서 담당하자라는 말은 그들을 우리가 껴안자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그들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껴안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형제들을 우리가 내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받지 않으면 그를 받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서로 껴안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껴안아야합니까? 그들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신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성도님에게 이렇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받으신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껴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껴 앉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결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우리 각 사람(믿음이 강한 자)이 이웃(믿음이 약한 자)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믿음이 강한 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믿음이 약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강한 자는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자에게 네 믿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왜 너는 담대하게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느냐 왜 그렇게 믿음이 부족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절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강함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이고 덕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강한 자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약한 자의 약점을 껴안음으로 고통을 당한 모델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누구보다 강한 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한 자로서 얼마든지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한 자로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약한 우리를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껴안고 받아들여야 그 공동체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같이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라는 것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을 가진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인내해야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을 가진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성경인 위로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내가 무엇입니까? 긴 기다림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신앙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와 신앙관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기다려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위로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이 약점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껴안아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또 서로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에 대한 껴안아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강함을 너무나 많이 오해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함이란 내 뜻대로 무조건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는 것이 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아니면 떠납니다. 여러분 이것은 절대 성경에서 말씀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무엇이 강함입니까? 내가 옳다고 강하게 생각하지만 사랑을 인하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강함입니다.

내 생각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를 생각해서 내 생각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강함입니다.

/내가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또 약한 자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그 공동체는 절대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으로 서로에 대해서 더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더 껴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공동체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5절과 6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여러분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한 뜻이 되고, 서로 한 마음이 되고 서로 한 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 마음가운데 나는 누구와는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될 수 있지만 누구와는 절대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없다 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한 뜻이 되고 한 마음이 되고 한 입이 되는 것만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예수님을 본받는 자의 삶임을 믿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서로 한 뜻이 되고 한 마음이 되고 한 입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임을 믿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실 그리스도는 절대 죄인인 우리를 받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껴안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받고, 껴안음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교회란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없을 때 유일하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하나님이 살아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교회를 인간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돈과 수의 논리로만 교회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소망이 없어도 교회에만 오면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인간적인 한계가 있어도 하나님에게만 오면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소망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소망의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 소망이 더 흘러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교회가 절망의 세상 가운데 소망이 흘러넘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를 본 받아 서로 껴안아주시고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한 뜻이 되고 한 마음이 되고 한 입이 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어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우리교회는 소망이 흘러넘치는 이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