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약한 자, 강한 자(3) (롬 15:1-13)
오늘 본문은 로마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와의 갈등에 대해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보면 바울 자신도 믿음이 강한 자에 속함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의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도 믿음이 약한 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의식법이 다 이루어졌는데, 아직 구약의 율법에 메여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자 라고 합니다. 여기서 담당하자라는 말은 그들을 우리가 껴안자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도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껴안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약한 자를 껴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이 강한 자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감수해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껴안는 것은 결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 고통스럽지만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여기서 우리 각 사람도 믿음이 강한 자입니다. 또 이웃은 믿음이 약한 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믿음이 약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강한 자는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자에게 “네 믿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왜 너는 담대하게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느냐 왜 그렇게 지식이 부족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절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강함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이고 덕입니다.
이렇게 강한 자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약한 자의 약점을 껴안음으로 고통을 당한 모델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누구보다 강한 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한 자로서 얼마든지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한 자로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약한 우리를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껴안고 받아들여야 그 공동체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라는 것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을 가진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인내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성경에 나오는 위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받아들이데,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인내란 기다림입니다. 또 위로란 성경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위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긴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또 약한 자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절대 그 공동체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더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그 공동체는 희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5절과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한 뜻이 되고, 서로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한 입이 되는 것입니다. 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는 교회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 마음가운데 나는 누구와는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될 수 있지만 누구와는 절대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한 뜻 한 마음 한 입이 되는 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예수님을 본받는 자의 삶임을 믿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7절을 또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실 그리스도는 절대 죄인인 우리를 받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껴안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모든 사람을 껴안으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대인들을 받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방인들도 받으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을 읽어보겠습니다.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교회란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없을 때 유일하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하나님이 살아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 교회를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과 수의 논리로만 교회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소망이 없어도 교회에만 오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한계가 있어도 하나님에게만 오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소망의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이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되게 위해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껴안아서 한 마음과 한뜻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