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참된 예배 자(말1:1-14)

금빛돌 2017. 3. 10. 18:01

말리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나의 사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이스라엘백성의 포로귀환이 완료된 후에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후 세 번의 포로귀환이 있었습니다. 1차 포로 귀환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까지 보았던 학개서는 1차 포로귀환 후에 중단되었던 성전재건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 포로귀환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3차 포로귀환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있었습니다. 이 말라기의 기록 시기는 3차 포로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된 후 느헤미야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은 다시 신앙이 헤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포로 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이 되었고, 느헤미야를 통한 잠간의 신앙 부흥이 있었지만 그들의 상황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페르시아 총독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개인적인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학개 218-19절을 보면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에 924일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곡식종자가 창고에 있었고,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이제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 그 날 부터 개인적인 살림살이가 나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2:18-19).

또 학개서 220-23절에 하나님께서 이방의 모든 세력을 다 무너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유다백성들의 개인적인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다백성들은 여전히 강대국인 페르시아 총독이 지배하는 한 지방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오면 항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돌아갑니다. 네 삶의 우선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하면 내가 축복으로 너와 함께 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진정으로 거룩한 삶을 회복하면 비로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듣고 돌아가서 정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또 조금이라도 거룩하게 살아가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순간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칩니다. 고난이 닥칩니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합니다. 사업도 잘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육체적으로 건강상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경제적인 침체, 육체적인 어려움에 빠지면 제일 먼저 어떤 의문이 생기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문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분명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하는 의문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12절에 기록이 되어 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십니까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기준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시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은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근거를 내 삶에 둘 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내 경제적인 상황이 좋아졌든지, 아니면 갑자기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든지, 이런 일들이 있으면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직장문제도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격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대부분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습니까?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우리를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구속의 사랑입니다.

2절 중 반절과 3절 초반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이삭의 자녀가운데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쌍둥이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내게 쌍둥이가 있습니까? 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는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의 자녀가운데 야곱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만을 사랑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실만한 이유가 야곱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로만 가득했습니다. 당시에는 장자만이 아버지의 축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자가 아니라 둘째였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야곱은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아니고 흙 수저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76절과 7절에서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구속)하셨나니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근거는 구원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계속해서 범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의 매로 치면서도 지금까지 생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사랑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아니하신 에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에서의 후예인 에돔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3절부터 기록되어 있다.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에돔)은 그들의 죄악대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돔은 312b.c. 이 후 나바트인에 의해 역사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택하신 백성이기에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존하게 하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은 항상 육신적인 삶이 잘되고 못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개인적인 형편과 나라의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고, 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나 우리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과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육신적인 형편의 잘 됨입니다. 오직 그런 기준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제일 중요한 근거는 구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무 조건과 이유 없이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할 때 사랑의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채찍을 내리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완전한 하나님의 공의대로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내가 원하는 그 무엇들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음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의 관심은 오직 나의 현실적 형편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 가정의 경제가 나아지지 않습니까? 왜 취직되지 않습니까? 왜 진학을 하지 못합니까? 하나님 왜 육신적인 질병이 빨리 낫지 않습니까? 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저도 한때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지금 네가 아무 것이 없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도 네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음을 가지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어떻게 고백합니까?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사랑만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삶 가운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으며 밭에 소출이 없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구원하신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은 현실적인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공경하고 순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전을 지었고, 또 성벽을 지었고, 또 말씀대로 열심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그들에게 축복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열심히 교회봉사를 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왜 축복을 해주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들의 순종과 제사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눈가림이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이름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6절부터의 말씀이다.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이름을 멸시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형식적인 제사로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형식으로는 열심히 제사를 드리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페르시아)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정결한 제물과 또 최고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셨습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그들 자신을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또 눈먼 제물과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으며 주의 상을 경멸하였느냐고 합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 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물들을 불태우면 없어지니까 좋은 것을 드리나 병든 것을 드리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이런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당시 최고의 지도자였던 페르시아 총독보다 더 못한 존재로(8)여기고 있었고, 또 하나님을 번폐스럽고 우습고(13) 가벼운 존재(6)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시 최고의 지도자였던 페르시아 총독의 생일 잔치였다면 결코 이런 예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 총독보다 못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을 페르시아 총독보다 못한 가볍고 귀찮고 번거러운 존재로 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도 그들의 현실적인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적인 삶을 볼 때 하나님은 너무나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았다면 당연히 하나님에 대해서도 아주 존귀하고 무겁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경제적인 형편을 보니까 하나님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예배의 자리에서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느냐 고 반문하십니다.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기도를 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또 이렇게 예배를 드릴 바에는 성전 문을 닫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여러분 혹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는 예배에 와 주고 봐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봐 주는 것을 내 자랑과 내 공로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또 내 마음이 내키면 예배에 오고 조그만 다른 일이 있으면 너무나 당연히 예배에 오지 않지 않습니까?

또 교회에 오더라도 예배 때문에 오지 않고 일 때문에 오지 않습니까? 또 예배에 오더라도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내 삶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셨냐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생각지도 않고 왜 내 삶을 어렵게 하시고 힘들게 하셨는가만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을 집에 애완용 강아지만도 못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강아지에게 드리는 예물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휴대폰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또 예배시간에 음식물을 먹어가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또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속으로 원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면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도 내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하나님께 그 어떤 예물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힘들면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와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절대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드리는 예배는 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라기 이후에 400년 동안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형식적인 예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존감이 굉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수모를 절대 참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제 그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1절에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서 하나님께 참다운 예배를 드릴 자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을 버리시고 이방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라기 때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참된 예배 자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이런 예배의 모습에 대해서 얼마나 섭섭하시고 분하셨는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12-13). 14절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수컷을 드려야 하는데 그들 가운데 수켯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리지 않고, 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속여서(사기하여)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속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그들이 삶 가운데 느끼는 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현실을 보니까 하나님이 너무나 초라하고 우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4:b).

//이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만군의 하나님 이라고 하십니다(8,9,10,11,13,14). 이스라엘은 자신이 페르시아의 한 지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우습게 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에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만은 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내가 무능하면 하나님도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초라하고 아무 것도 없으면 하나님도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비록 내 삶이 초라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이 세상과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왕도 얼마든지 패하시고 또 새롭게 세우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무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는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예배가 구원의 감격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이 예배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왕의 자리에 있는 것보다 더한 하나님에 대한 공경함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예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의 고백이 있는 참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는 거룩하시며 지금도 살아계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