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위한 존재냐 내가 하나님을 위한 존재냐(창22)
어떤 분을 통해서 밥 쇼그렌이 지은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라는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강아지는 주인이 집에 들어오며 정말 반갑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주인이 집에 들어와도 “야옹”소리도 내지 않고 본체 만체 합니다. 무엇보다 강아지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서 기른 개는 쥐까지 잡아서 주인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주인에게 충성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요즘 고양이는 거의 쥐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희 집 마당에 쥐가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교회 마당에 도둑고양기가 두 마리나 있는데 쥐를 잡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주인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보다 주인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나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항상 주인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강아지를 키우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강아지가 주인에게 충성하는 만큼 강아지를 더 사랑하고 돌봅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언젠가는 주인을 떠나 도둑고양이가 됩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쥐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음식물만 뒤지는 동물로 전락해버립니다.
밥 쇼그렌은 이런 강아지와 고양이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강아지와 같은 성도가 있고, 고양이와 같은 신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강아지와 같은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기쁨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시는가 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강아지 성도에게 더 크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고양이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고양이와 같은 신자는 절대 하나님께 나올 때 기쁨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겨우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고양이 신자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시느냐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고양이신자는 절대 하나님께 충성하며 봉사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또 고양이 신자는 하나님을 믿지만 절대 하나님에게서 메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옥가지 않을 정도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복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고양이신자는 이 땅을 살면서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강아지 성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고양이 신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나를 위한 존재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을 위한 존재인가?
예전에 저는 성경을 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존재인가”를 고민하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존재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존재라고만 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생략해야할 것입니다.
만일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성경에 죄에 대한 심판이나 심지어 지옥과 같은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하나님께서 절대 우리들에게 고난이나 고통 같은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더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존재이지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연히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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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도 오직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소원과 욕망을 이루기 위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조차도 내 인생의 소원과 욕망을 위한 존재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조차도 내 인생의 소원과 욕망을 위한 존재로 생각한다면--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또 만일 단순히 나의 개인적인 소원만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았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고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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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나를 위한 존재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를 더 위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을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내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나를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면 오히려 우리는 나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더 풍성히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나를 위해 주시고, 더 나와 함께 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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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창22장 앞부분 까지는 아브라함은 단순히 하나님조차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오직 자신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창12장에서 가나안땅에 흉년이 드니까 가나안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땅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신앙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창 1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보다 오직 자신이 육신적인 복을 받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 애굽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이면서까지 자신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같이 창세기 22장까지의 아브라함은 고양이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복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아브라함 자신에도 그렇게 큰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창22장에 와서 아브라함에 와서는 아브라함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합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존재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존재로만 생각햇다면 절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이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생각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자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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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기서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이용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가장 귀한 것도 드릴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드렸을 때--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 아낌없는 복을 다시 약속해주십니다.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독자 이삭을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17절에서 아브라함을 위해서 큰 복을 약속하고, 아브라함의 자녀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17절에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 씨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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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렸을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만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구원을 얻는 역사를 일으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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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도 이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을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2절--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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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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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이제)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여기서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들여서 하나님이 거할 집을 지으려 하자---///이제 하나님께서 반대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이루게 하시고,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을 통해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로마이야기에서 저자는 로마의 모든 신들은 다 인간들이 자신의 탐욕과 욕심을 위해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이야기를 쓴 저자는 이상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신이 이 세상에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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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합니까?
그들은 자신 마음대로 살기위해서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더 이상 메이기 싫고 탐욕대로 살기위해서입니다.
요즘 영국에서 무신론 간판을 건 버스들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없다-그러므로 당신이 하고 싶은 욕망대로 마음대로 살아라는 광고 문고를 건 버스들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억해애합니다-
--정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이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인간을 위한 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위해서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물론 하나님 자신을위한 말슴이지만--그것이 또한 우리를 위한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이용해서 산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나를 위한 길이 아님을 알아야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통해서 보앗듯이--우리가 진정으로 하니님을 위한 존재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될때--------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집을 세워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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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유며안 연설이 잇습닏-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햇습니다-----
--정말 미국이 이렇게 살았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개인주의에 사로잡혀서 국가가 망하던 말던 나만 잘 살자고 했을때--지금과 같은 이런 경제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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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닏-
이제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 생각하면--하나님께 나와서 무엇이든지 달라고만 하는 고양이의 신앙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ㅣ-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몸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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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의 우선권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과연 나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이 세상이 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이 결코 나 자신이 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실 거신가라고 생각하는 고양이 신자의 단계에서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강아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아지 성도는 단순하게 내 삶에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강아지성도는 내 삶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오직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섬깁니다.
-또 강아지성도는 하나님을 내 삶의 유익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내가 하나님을 섬겻는데 현실가운데 (손해나)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합니다.
우리 모두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강아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