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17-20)
오늘 본문 앞에 눅10장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세워 동네 각처로 보내 천국의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70명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이 주님께 한 귀환보고입니다.
17절 입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고 합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왜 이렇게 기뻐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앞의 말씀을 보면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눅9장37-42절에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 계실 때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자는 변화상에서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제외한 9제자들입니다. 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물리쳐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귀신아 물러가라-병이 나을지어다 사단의 권세야 물러갈지어다” 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귀신이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9장에 보면 귀신이 물러가지 않자 제자들과 그 아이의 아비가 서로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 내려오신 후 눅9:40절부터 보면 ”눅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눅9장의 사건에서 9제자들이 제자들이 귀신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에 뽑힌 70인의 제자들이 이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2제자 중에서 9제자들도 귀신을 물리치지 못했는데, 10장에 와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니 귀신도 두려워서 떨고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70인의 제자들이 9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한 일들은 자신들이 하니까 너무 기뻐서 예수님께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보고에 대한 주님의 답변 18절에 나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한수 더 뜨십니다. “너희가 귀신을 물리칠 때 내가 보니까 귀신의 우두머리인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또 19절에 이렇게 너희가 행한 그 능력은 너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내가 너희에게 준 능력과 권세 때문이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
------이렇게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20절에서 오늘 본문의 요절이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 즉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만 있으면 되지 -전도하고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물리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고, 또 능력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일도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기뻐 할 일입니다. 그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또 우리도 그 능력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능력을 행하는 일들을 한다하더라도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그것보다 더 기뻐할 것은 너희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해야한다고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원초적인 기쁨이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혹 내게 어떤 승리하는 큰 일이 있더라도 그 승리의 기쁨 때문에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큰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해서 병원에서 못 고친다는 암이 나았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입니까? 저도 요즘 들어서는 치유를 위해서 정말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다--또 어떤 경우에는 기도했는데-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암 병이 나은 기쁨도 기쁘지만 우리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병 나은 일에 도취하여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지는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보니까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너는 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떻게 알콜 중독자가 되었지, 그러니까 “내가 본래 절름발이때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거지생활을 해서 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알콜중독자가 됬습니다. 또 가시다가 창녀를 만났습니다. 너는 어떻게 창녀가 되었니? 하니까 예수님이 나에게 귀신을 쫒아내서 맑은 정신을 만들어 주신 건 사실이지만-귀신들렸던 사람이라고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먹고 살기위해 창녀가 되었습니다. 또 조폭을 만났습니다. 너 어떻게 조폭이 되었니? 라고 하니까 본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예수님이 눈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았을 때 몰랐는데, 눈을 떠보니까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너무 많아 화가 나서 조폭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물론 병고침--또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기쁘고 중요한 일은 구원받아 우리 이름이 천국에 기록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가 막힌 배려를 볼 수 있습니다.
-- 이 말씀은 70인 제자만 아니라 그들이 돌아와 보고를 하였을 때 그 능력을 행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염두 해 두신 말씀입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70인에게 “그렇구나 네가 큰 귀신을 물리쳤구나 이렇게 귀신을 물리친 네가 진짜 내 사랑하는 제자다”--라고 하면서 귀신을 물리친 것을 가지고 부추켜 세우고, 심지어 그것이 예수님의 참 제자인 증거로 말씀했다면 그 주위에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귀신을 물리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70인의 제자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내가 왜 그런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가 하며 영적인 패배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큰 능력을 행하고 기뻐하며 돌아온 70인의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능력을 행한 것은 너희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큰 권세를 주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또 그것을 가지고 너무 기뻐하지 마라-잘못하면 공동체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중요한 것은 귀신을 물리친 것보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더 기뻐해야할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말씀은 능력을 행하지 않은 다른 제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차원에서 아무리 좋은 간증집회라도 너무 자주하면 좋지 않다고 봅니다. 간증집회는 대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누구나 다 그런 기적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기적보다 우리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 것이 가장 큰 기적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가장 큰 증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 말씀은 70명 제자들의 미래를 염두 해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봅니다.
70명의제자들이 오늘 승리를 보고했는데 그들이 앞으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기도하지만 귀신이 나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믿기는 커녕 오히려 쫒겨나고 핍박과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70인의 제자들이 항상 승리에 관한 생각만 했다면 그들이 나중에 실패했을 때, 그들의 영적인 승리가 오히려 그들에겐 더 큰 영적 패배감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영적침체는 실패 뒤에도 오지만 오히려 영적 큰 승리 뒤에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을 염두 해 두시고, 너희가 승리해서 기뻐하지만--그것에 너무 도취해서 있지 말고 --오히려 그것보다 너희들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 것으로 더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쁨만 가지만 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되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굳이 싸워서 승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신앙적 안일주의를 주기 위해서 주신 말씀으로 보면 안됩니다
--승리했더라도--구원의 기쁨보다 더 기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구원받았다는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그 어떤 좌절된 일이 있어도 항상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구원의 감격과 기쁨 속에서 더 큰 능력을 사모하고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 속에서 사탄의 능력과 권세를 도전해야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에 도전하며 살아야합니다.
-이렇게 도전할 때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용기를 줍니까? 혹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실패했더라도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으며, 우리 이름이 천국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 기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절망적 상황을 모두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혹 입시생이 있습니까?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러면 구원파처럼 죽어서 빨리 천국가자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는 승리가 보장되었으니 이 땅의 실패에 기죽지 말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해를 돌아 볼 때 분명 우리의 삶 가운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것보다 우리는 더 많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승리를 거두었느냐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너무 기뻐하지 말씀입니다.
또 너희가 실패했다는 것을 가지고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공했다고 했을 때도 구원의 기쁨을 잃을 만큼 너무 기뻐하지도 마시고--또 실패했다고 했을 때도 구원의 기쁨을 잃을 만큼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기쁨이 있느냐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항상 구원받았다는 것만으로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원초적인 승리의 기쁨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있습니까?
--우지무라 간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남의 부요함도 부럽지 않나니/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그 성공에 기뻐하지 않나니/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이 우리의 가장 큰 승리와 성공의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 진정으로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본문 아래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그 때에(앞의 말씀을 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천국에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기뻐하는 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먼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 천국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그것에 메여서--소유하면 기빠하고--소유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살면 우리가 결국 천국의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할 때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어린아이는 단순합니다. 작은 일에 만족을 잘 합니다. 우리에게 이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는 사탕하나만 줘도 너무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그것 하나 주는 것 가지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고-내 이름이 천국이 기록된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배가 있습니다
타이타닉호와 구조선입니다.
타이타닉호는 가라앉는 배입니다. 거기서 1등 칸에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배의 선장일수도 있습니다. 또 그 배에서 날라 다니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호에서 잘 살았건 못살았건 결국 그 배는 가라않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건강하고-아무 어려움이 없이 살다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천국에 있지 않으면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조선이 있습니다.
타이타닉호에서 구조선에 왔을 때는 구조선에 탔다는 것만으로 기뻐합니다.
그 타아니낙호의 구멍을 바라보면서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구조선에 있는 것만으로 기뻐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구조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등칸에 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구조선에서 날아다닙니다. 큰 능력도 행합니다.
그런데 내가 구조선에 올라타기는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초라한 방에 있습니다. 그래서 옆방에 탄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어느새 내가 구조선에 욌다는 것을 잊어버리고-옆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구조선에 그 어떤 위치에 있던지— 우리 구조선은 하나님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능력 있건 없건 --우리는 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 라는 책에서 천국에 가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았던 것이 우리의 영원한 업적이 누구는 문패가 있는 대저택에 있고, 누구는 쓰러져가는 집에 있고, 또 누구는 개털모자를 쓰고, 누구는 면류관을 쓰게 된다 고 합니다. 어떤 대형교회에서는 이 책을 아주 크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분명 하나님 앞에서 판단을 받습니다. 또 우리가 행한 것에 따른 상급도 분명히 있고—상급이 있으면 그 상급이 차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급차등고착론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차등된 상급으로 영원히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비추어본 하나님나라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현재 임하여진 하나님나라를 알면 우리가 가게 될 미래의 하나님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현재에 임한 하나님나라를 연구해보면 절대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는 우리의 행한 일들에 따라서 차등되게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4:10. 이십사 장로들(신구약 성도들을 대표하는 하늘의 영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던지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보면 24장로들이 그 모든 면류관을 다 주님께 던집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큰일을 해서 그것 때문에 큰 면류관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모든 면류관을 주님께 던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모습이었든지 우리는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다 같이 오직 주님의 공로와 덕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신나고 놀라운 사실입니까? 난 권사도 못되고 장로도 못되었다 해서 결코 저 천국에서 차별이 없습니다.
-또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러면 내가 왜 이 땅에서 죽어라고 주의 일을 합니까?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던진다면 이 땅에서 일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씀하는 분도 있습니다.그런데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것은 그 모든 것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혹 우리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덕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 모두 다 같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장차올 천국의 기쁨을 현재에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