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통해서 본 하나님나라(삼하9:1-13)
오늘 본문은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나라에서 핏줄이 다른 사람이 왕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대의 왕가의 모든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도리어 사울 왕가의 집에 살아남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집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입니다. 그런데 이 므비보셋은 양쪽 발을 다 쓰지 못하는 절름발이였습니다.
7절에 보면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8절에서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합니다.
그리고 9절과 10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왕의 시종인 시바를 불러서 므비보셋을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고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합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은 항상 다윗의 왕자들과 같이 다윗의 상에서 떡을 먹게 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세상의 왕들과는 달리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까?
첫째는,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생애를 보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살아남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가 그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도 다윗 앞에 서 있는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장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우리도 므비보셋처럼 이제 하나님의 돌보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하나님의 식탁에 앉게 하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왕자와 같은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자와 같이 하나님의 식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같이 누리면 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도 긍휼이 필요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다윗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다윗은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집에 살아남은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왕의 손에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시간적으로 말하면 20년 전쯤 됩니다. 다윗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냈지만 요나단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그가 받았던 은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하지만 사람의 은혜에는 감사할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줄 알았지만,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부모에게 돌아갈 예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잘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부모의 은혜도 알고, 친구의 은혜알고, 스승의 은혜도 아는 사람입니다.
또 사람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은혜와 감사 이 두 가지 말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