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더라도 씨를 뿌려라(시126:1-6)
인도에 가면 힌두교의 교리에 따른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태어날 때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면 그 자신뿐 아니라 후손까지도 그 신분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 좋지 않은 신분으로 태어나면 자신뿐 아니라 후손까지 불행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상부터 자신과 후손까지 평생 빨래만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뱃사공만 하다가 죽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평생 시체를 태우는 일만 하다가 죽어야하는 사람도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시체를 태우는 장작을 패는 일만 하다가 죽는 사람도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신이 자신에게 주신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신이 주신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 불교에서는 자신이 주어진 삶이 과거 전생의 업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생에 잘못된 삶을 살았으면 현생의 삶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만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삶조차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말씀하는 예정하심이란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 하나님의 작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믿게 하셔서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이란 운명이 아닙니다. 나는 평생 뱃사공만 하도록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자손 대대로 빨래만 하도록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무조건 불행한 삶을 살도록 예정하신 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얼마든지 새롭고 창조적인 삶(새롭게 변화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떨 때 운명론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까?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적이고 계속되는 불행한 삶을 살 때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쓴 다니엘 코틀립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습장애로 낙제를 거듭하다가 겨우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또 대학도 두 번씩이나 옮겨 다닌 끝이 템플 대학교에서 학습장애를 극복하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를 그는 "마치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정신의학 전문의로 중독 증세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에 서른세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손상을 입어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그 사고는 결혼 10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줄 결혼선물을 가지러 가는 길에 당한 사고였습니다. 사고 후 전신마비가 된 후 극심한 우울증을 격다가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 아내가 죽고, 또 누님와 부모님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은 둘째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 샘이 14개월 되었을 때 자폐아 진단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 코틀립은 이런 상황가운데 자신의 손자인 샘을 위해서 4년동안 32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말일 여러분인 이런 불행한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이런 일을 격는다면 우리는 낙담하고 좌절하여, 이것을 내 인생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잡혀 있을 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제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영원토록 지속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 마음을 담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9--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에 행하므로
10. 우리가 맹인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살지고 건강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11.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사 59:9~11).
그래서 시편137편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 강변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과거를 기억하며 울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들을 보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니까, 바벨론 강가에 수금을 걸어놓고 노래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70년 뒤에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꿈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 고레스의 마음을 돌이켜 주셔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126편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어떤 장로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10여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한 순간에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정말 그 이야기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운명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인격적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역전시켜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기자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니까 이제 시편기자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이야기를 전하여 주시던 장로님의 입에는 정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항상 그 장로님을 볼 때마다 얼굴이 어두워보였습니다. 그래서 밝게 웃으시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장로님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들을 누가 행하셨습니까?
2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단순히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앞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포로에게 해방시켜주신 것을 두고 기뻐하며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왜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라고 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완전히 해방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바벨론에서 1차 포로귀환을 하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포로들 바벨론에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또 여기서 우리의 포로들을 남방시내들 같게 해달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북쪽 갈릴리 지방에는 비가 많이 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남쪽 네게브 지방은 일년에 비가 50-100미리 밖에 오지 않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올 때는 하루에 50-100미리가 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방에는 일년에 그 50-100미리 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방의 시내들은 항상 메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겨울철에 갑작스런 홍수가 있으면 메마른 남방시내가 갑자기 물이 불어서 큰 시내를 이루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메마른 남방시내와 같습니다.
그런데 메마른 남방시내에도 홍수를 주시면 금방 역전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 한순간에 역전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우리의 포로들을 남방의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남방시내와 같이 일 년이 되도록 한 방울 비가 오지 않는 삶이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년 동안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내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한 순간이라도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역전이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일차로 나올 때까지 7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또 완전히 나올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또 그 장로님도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때를 기다린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흥의 때를 기다리면서 할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을 계속 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다” 말은 “씨 주머니를 들고 울면서 나가는 자” 라는 뜻입니다. 또 여기서 울면서 나간다는 말은 한 순 간의 행동이 아니라 계속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현재에는 울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씨를 뿌리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울더라도 밭에 씨를 뿌리러 갈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울더라도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며 돌아올 것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1차 포로귀환 때 한 번의 꿈꾸는 것과 같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울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울더라도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더라도 씨를 뿌리러 나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지난 10년을 바라보면서 내가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아무 열매도 없었다고 지십니까?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씨를 뿌릴 힘도 없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래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울더라도 계속해서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쁨을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울더라도 어떤 씨를 뿌려야합니까?
1)울더라도 기도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다니엘서 9장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그때부터 눈물의 기도를 하기를 시작했습니다.
“2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풀어주실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풀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기도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다니엘이 뿌린 기도의 씨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은 나중에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또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할 때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 왕에게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자라는 것이 알려지자 다윗은 미친 사람처럼 침을 흘리며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어떻게 했습니까?
“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고 합니다.
다윗은 울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울면서 기도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서 울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마음컷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반드시 하나님의 병에 담아두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당신의 책에 기록을 해 두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울더라도 기도의 씨를 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뿌린 눈물의 기도로 인해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하나님께 눈물이 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울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일이 있어도 기도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냥 잘 되겠지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심은대로 거두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많은 것을 원해도 우리가 기도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결코 거두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서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일이 잘 되는 것은 재앙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일이 잘되지 않고 눈물이 나도 기도하는 것은 축복의 징조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한해의 말에, 또한 우리 인생의 말년에 많은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의 씨를 많이 뿌리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씨를 뿌린 만큼 기쁨의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울더라도 기도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
-또 우리가 어떤 씨를 뿌려야합니까?
2)말씀의 씨를 뿌려야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가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70년동안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울더라도 말씀의 씨를 뿌려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의 씨를 뿌려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가 제일 괴로울 때는 열심히 말씀을 전했는데도, 사람들이 그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입니다.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가 제일 낙심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말씀을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갈6장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을 심은대로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낙심이 되어도 말씀의 씨를 뿌려야합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의 씨는 먼저 나 자신에게 뿌려야합니다(나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자신있게 할수 있는가? 성경공부다—오후목장모임)
큐티 성경읽기 성경공부 다시 시작--청대학부제자훈련-교사 집중세미나--남자 장년 성경공부. 다시 시작할 것)
또 그 다음에는 우리 가정에 자녀들에게 결정적일 때 말씀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의 복음의 씨를 뿌려야합니다.
우리가 할 일을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마지막으로 찬양의 씨를 뿌려야합니다.
유다왕 여호사밧 시대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때 유다왕 여호사밧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대상20: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호사밧왕의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의 씨를 뿌리고, 말씀의 씨를 뿌리고, 마지막으로 찬양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일하셨고, 이제 그들은 승리의 탈취물-즉 기쁨의 단을 거두는 일밖에 없었습니다(25,26).
/시편34편 표제에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노래하고 있습니까?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고 합니다.
울더라도 기도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찬양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의 단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