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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롬8:10)

금빛돌 2016. 5. 14. 21:42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축하는 절기입니다. 또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절은 성령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오심을 축하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이 지상에 교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습니까?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탄절과 부활절만큼이나 축하를 하고, 기억하고 기념해야할 할 절기가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러면 성령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원래 태초에 사람이 창조될 때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흙인 사람에 성령을 불어넣어주실 때 비로소 인간이 생령, 즉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2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성령)()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그 속에 성령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63절을 찾아보겠습니다.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인간이 범죄 한 후 이제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서 사람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이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잠시 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도 주시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속해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왜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들 속에 계속해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죄악 된 인간 속에는 계속해서 거하실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용서해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예수님을 믿으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성령)은 의(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이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라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 안에 있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의가 바로 나의 의가 됩니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교리가 전가의 교리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로 전가가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게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의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로 전가가 됩니다. 여기에 몸이 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검은 몸으로는 목욕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목욕탕에 갈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흰옷을 입으면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검은 몸을 가진 사람이 흰 옷을 입고 목욕탕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이 흰 옷을 입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사람의 몸은 검습니다. 그래서 목욕탕 주인은 그 사람의 입은 흰 옷 때문에 그 사람을 깨끗하다고 칭하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의 교리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바로 전가의 교리와 칭의의 교리입니다. 만일 전가의 교리와 칭의의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기독교와 복음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어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여 줍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의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의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던 의입니다. 또 부활하신 의입니다. 이 예수님의 의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예수님을 믿으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성령)은 의(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절대 죄악 된 우리 인간에게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 의 때문에 성령이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시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 아주 더러운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흰옷을 입은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더러운 집에 깨끗하고 흰 의자를 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흰 의자 때문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그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은 더 이상 우리 안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하졌습니다. 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지난 후 50일 뒤에 성령하나님이 초대교회가운데 강림하시게 되었습니까?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의가 다 완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이제 영원토록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계시고, 영원토록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여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1. 우리 가운데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에 대해서 꾸짖고 책망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16:8). 만일 우리에게 성령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절대 죄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도덕적인 규범만 지키면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대한 목마름을 주십니다.

2. 또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어지게 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고전12:3).

만일 우리 가운데 성령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성령하나님이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여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그 성령하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전 12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나와 우리교회 주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또 우리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고 계십니다(36:26,27).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절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가운데서는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절망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절망을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 밤낮으로 예수님과 숙식을 하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훈련도 하고, 전도훈련도 받았고, 또 제자훈련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여러 가지 기적만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갈릴리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그들을 얽메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주고, 축복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자신만 아니라 자녀도 복을 받고, 또한 그들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이 실패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에게는 율법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은 신약시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까?

36:26. 또 새 영(성령)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께서 성령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무엇보다 우리의 굳어지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하나님을 의지하면--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대로 살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가랴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성전건축이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인간적인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어떤 큰 산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넘을 수 없는 큰 산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전도가 우리 힘으로 넘을 수 없는 큰 산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넘을 수 없는 큰 산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큰 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다고 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큰 산도 평지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4. 또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5:5).

저는 오래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떤 기적을 통해서 보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사입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의 기도의 씨름을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가운데 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그때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더 풍성히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또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14:26).

성령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또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 마음가운데 와 닿게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풍랑이는 바다위에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니 안심하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이제 성령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니 안심하라우리를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걱정하거나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내일의 염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때 성령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여러분 최근에 말씀을 듣거나 보는 가운데 특별히 마음가운데 와 닿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에 성령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말씀이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오늘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을 말씀으로 들려지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또 성령하나님은 장차올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경험시켜주고, 체험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엡114절에 이는(성령은) 우리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장차 올 하나님나라를 미리 맛보게 합니다(선취).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병이 없는 완전한 새로운 몸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의 병든 몸을 새롭게 하시고 치유케 하시는 것을 지금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몸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아팠던 몸이 새롭게 되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시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모든 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함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맛보게 될 기쁨을 체험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데, 왜 우리는 그 성령의 역사를 더 충만하게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성령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래서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말씀하고 있습니다(4:30).

/물론 우리에게 죄가 있어도 성령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구원을 받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근심시켜서 가나안 땅을 맛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안에 성령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성령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시켜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예수를 믿으면서 전혀 구원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봉사를 단순한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합니다. 또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활기와 기쁨이 없습니다.

또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싫어지고 세상이 좋아집니다. 예배가 싫어집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만 생깁니다. 신앙이 형식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성령을 근심시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살았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게 됩니다.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성령을 근심시키는 죄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제가 스펄전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 한다면, 만약에 우리가 기도 골방의 문에 거미줄을 치게 한다면, 만약에 우리가 성경읽기를 잊어버린다면, 만약에 우리가 게을러서 성경의 책장이 거의 한데 붙어 있도록 만든다면,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결코 그 어떤 선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우리 자신들만을 위한다면 성령은 근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여러분들이 세속적인 일들에는 대단히 활동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휴식과 오락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령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속적인 것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성령은 그 안에서 근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여러분을 떠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만약에 성령이 여러분에게 떠나간다면 여러분에게 가장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스펄전은 성령이 떠나간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떠나가는 것이나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이나 현상은 같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 시대 부흥의 책임이 성령님께 있는 것처럼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불러와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은 이미 오순절 이후에 교회와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근심시키는 은밀한 죄를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는 날(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입니다

성령이 마음껏 춤추시게 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