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연구/시편

시편강해11편-20편(김효성목사)

금빛돌 2016. 4. 16. 13:01

11: 하나님께서 인생을 감찰하심

 

[1-2]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 . . .

 

다윗은 말한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다윗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도망하라고 권면하였다.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표현은 새가 사냥꾼을 피하여 산 속으로 날아 숨듯이 도망하라는 말이다. ‘네 산네가 피신할 곳이라는 말로서 피신할 인간적, 세상적 방책을 의미한다.

 

2절은 원문에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은 믿음 없는 친구들이 그에게 도망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이며 그를 쏘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성도는 마음이 바른 자로 표현된다. 그는 이성과 양심을 따라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게, 악인은 그런 성도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한다. ‘어두운 데서 쏜다는 말은 은밀히 해치려 한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솔직하거나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거짓되며 이중적이다.

 

다윗은 환난 중에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피난처이셨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 참 믿음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당황하거나 두려워 떨거나 낙심하는 것은 믿음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참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피하며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시편 46편 저자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했다(46:1).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다윗은 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말한다. ‘’ (foundations)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교리들과 생활 교훈들 곧 신앙생활의 기본 원리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기독교의 기초이다. 실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터이시다(고전 3:11). 우리는 기독교의 기본적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온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6:1-2).

 

건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 건물은 조만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기본적 원리들이 부정되거나 무시된다면, 거기에 어떤 기독교적 삶이 가능하겠는가. 기독교의 기본적 원리들이 부정된다면, 거기에 참된 기독교는 없을 것이며 기독교인의 믿음과 소망은 헛될 것이다. 거기에는 신앙의 정조와 절개를 지키는 보수신앙과 의롭고 선하게 사는 도덕적 삶이 무의미하며 무가치할 것이다.

 

때때로 세상이 악화되어 사상적, 윤리적 기본이 흔들리는 시대가 있고 심지어 오늘날처럼 교회조차도 부도덕하고 배교적이게 되는 때가 있다. 세상은 심히 불경건하고 음란하고 쾌락적이며 자유주의적 교회들은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부정하고 왜곡시키며 심지어 낙태와 동성애 등의 악을 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터는 견고하다. 디모데후서 2:19,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시편 102:27,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히브리서 13:8-9,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디모데후서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므로, 성도의 경건하고 의로운 삶의 기초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에 계신다. 그는 무한하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 특히 천국에 계시며, 또 옛시대에 성막이나 성전에서도 구름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는 오늘날에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성령으로 항상 계신다(고전 3:16). 그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특히 그 영광의 보좌를 하늘 즉 천국에 두셨다. 그의 보좌는 통치하시는 왕의 보좌이며 심판하시는 재판장의 보좌이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심히 거룩하고 위엄이 있다. 그는 하늘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의인과 악인을 감찰하시고 공의로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살피신다. 하나님의 눈은 매우 밝으시다. 하나님의 시력은 완전하시다. 그 시력은 약해지거나 쇠하여지지 않는다. 또 그는 우리의 삶을 감찰하신다. ‘안목이라는 원어(아프아프 #['p][')눈꺼풀이라는 뜻이며 감찰한다는 원어(바칸 @j"B;)시험한다, 증명한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의 행위뿐 아니라 생각과 감정과 뜻까지도 다 아시고 그의 선함과 진실함을 시험하시고 판단하신다. 시편 139:1-4, 2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시험하시며 그가 과연 진실한 신앙고백자인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지하는지, 혹시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인 자가 아닌지 시험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사랑하는 의인을 인정하시지만, 교만하고 강포한 악인을 미워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도덕적 판단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분명하고 정확하다. 세상 사람은 악인을 칭찬하고 그를 친근히 할지 몰라도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항상 명확하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미워하신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신다. 그것은 악인이 받을 징벌이다. 아무리 약삭빠른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내려치시는 그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 징벌은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묘사된다. 그것들이 악인의 소득이다. 불과 유황은 맹렬한 불의 형벌을 가리킨다. 유황은 성냥과 화약의 원료로 불이 아주 잘 타는 물질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셨고(19:24) 최종적 지옥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 묘사되어 있다(21:8). 또 태우는 바람은 환난과 재앙의 바람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들에게 내리실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증거되고 의인의 억울한 고난이 보상되며 마침내 세상의 도덕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좋아하심이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그의 얼굴은 정직한 자를 보시리로다](MT, KJV).”6)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의 이유, 즉 의인을 시험하여 인정하시고 악인의 악을 판단하시고 징벌하시는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다. ()는 도덕적 표준에 일치함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 실상, 그 자신이 도덕적 표준이시다. 또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고 악한 일을 미워하시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다. 또 그의 얼굴은 정직한 자를 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행을 미워하시지만, 의인들의 선한 행위들을 좋아하시고 그들에게 더 풍성한 은혜와 평강과 능력을 내리실 것이다.

 

 

시편 1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로 피하자. 그것은 믿음의 당연한 표현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할 것이다. 시편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기본이 흔들리는 세상과 교회의 현실에서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항상 피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신다. 그는 의인과 악인을 아시고 감찰하시고 판단하신다. 그는 의인과 악인에게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의로운 삶을 살자.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미워하시고 그 악행에 대해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인의 삶을 인정하시고 기뻐하시고 복주실 것이다.

 

 

12: 거짓된 세상에서 지키심

 

[1-2]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말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다. 성도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행복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성도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할 수 있고 그의 응답함을 체험한다.

 

다윗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까닭은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충성된, 신실한, 믿을 만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경건하고 충성된 자가 하나씩, 둘씩 없어져 가는 현실은 슬프고 안타깝고 또 이런 구약교회의 영적, 도덕적 현실은 매우 절망적이게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거짓말을 하며 아첨의 말을 하고 또 두 마음으로 말한다. 그들은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며 또 속과 겉이 다른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를 매우 미워하신다(6:19). 또 아첨의 말은 사람을 멸망시킨다(26:2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교훈하였다(4:25).

 

이런 현실에서 성도가 어떻게 신앙과 경건, 정직과 충성을 논할 수 있겠으며, 이런 현실에서 그가 어떻게 신앙과 정직을 지키며 또 고난과 외로움을 각오함이 없이 진리를 전파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때 성도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3-4]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사람의 거짓과 교만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첨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자기를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실 것이다. 그는 사람이 거짓된 아첨의 말이나 자랑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철저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는 사람의 말 한마디까지도 공의로 갚으실 것이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성도는 세상에서 악인들에게 눌림을 당하고 탄식하므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 가련하고 고통을 당하는 자로 표현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한 때에 일어나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실 것이다.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는 구절에서 그 원하는이라는 원문(야피아크 로 /l j'ypiy:)그를 비방하는 자로부터 건져’(NIV)라는 뜻이든지, 혹은 그가 원하는이라는 뜻이라고 본다(NASB). 안전 지대는 더 이상 원수의 비방과 핍박이 없고 싸움과 위협도 없고 오직 평안함만 있는 곳을 가리킨다.

 

[6-8]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악인들의 말은 악하고 거짓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순결한 은같이 오류나 거짓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직하고 순결하여 우리가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만하다(19:7-8).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세대에서 성도를 지키시고 보존하실 것이다. 5절에서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지켜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경건한 롯을 심히 음란한 소돔 성으로부터 구원하셨다(19:16-17, 29; 벧후 2:7-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또 말한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이 세상이나 부패한 교회에서, 악인들은 곳곳에서 활보하고 있고 비루함 즉 대단히 나쁘고 야비하고 부도덕한 일, 저질스럽고 무가치한 일이 사람들 중에 높아지고 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은 물론이며 교회도 때때로 심히 부패함을 알자.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사회는 그러하였고 신약교회의 역사도 그런 점들이 보인다. 교회가 부패할 때 경건하고 충성된 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거짓과 아첨이 유행하고 참된 성도들은 눌림과 궁핍 때문에 탄식한다. 세상은 의례 그렇고 그러므로 회개해야 구원을 받지만, 교회도 때때로 그러한 것이다(딤후 3:1-5).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끝까지 지키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거짓말로 비방을 받는 참된 성도들을 도우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지키시고 건지셔서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함을 알자. 성경에는 거짓과 오류가 없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행될 것이다.

 

 

13: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림

 

[1-2]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다윗은 원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여러 날 동안 마음에 근심하고 그의 원수는 그를 대항하여 자긍하며 의기양양해 하였다. ‘종일토록이라는 원어(요맘 !m;/y)날마다’(KJV, NIV) 혹은 계속’(BDB)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의 마음의 근심과 고통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고 점점 커져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잊으신 것 같고 그 얼굴을 숨기신 것 같았다. 그는 다윗을 돕지도 않으셨고 악인을 징벌하지도 않으셨고 다윗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도 주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원문에 보면 다윗은 1절에서 2, 2절에서 2, 모두 4번 아드 아나(hn:a; d[')라고 부르짖는다. 우리 말 성경은 3번은 어느 때까지라고 번역했고 1번은 언제까지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침묵하심이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고 그의 마음의 고통도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높으신 뜻, 깊으신 뜻,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뜻, 완전하신 뜻 가운데 어느 기간 동안 다윗을 그렇게 버려두셨다.

 

그러나 성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여호와여하며 부르짖었다. 우리에게는 부르짖으며 기도할 하나님이 계시다.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그의 정하신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3-4]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고난 중에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기도하였다. 첫째로, 그는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생각한다는 원어(나바트 fb'n:)본다, 주목한다, 중시한다(re- gard)’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시고 중시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행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소돔에서 건지셨다(19:29). 또 하나님께서는 라헬을 생각하셔서 요셉을 잉태케 하셨고(30:22), 한나를 생각하셔서 사무엘을 잉태케 하셨다(삼상 1:19).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 안에 있다.

 

둘째로, 다윗은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눈을 밝힌다는 것은 낙망하기 쉬운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며 또 자신이 처신할 바를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판단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부족이 있으면 철저히 반성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고난의 현실 속에서 사람이 눈이 어두우면 가야 할 바른 길을 잃고 방황하며 믿음 없이 행하고 말과 행위에 실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밝아야 한다.

 

또 다윗은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목적을 표현하였다. 그는 사망의 잠을 자지 않기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낙심은 사람을 불신앙에 떨어지게 하고 불신앙의 결과는 영적 죽음이다. 불신앙은 영적으로 잠자는 것과 같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잠이다. 또 그는 그의 원수가 그를 이기었다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기뻐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성도가 의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손이 피곤해지면 대적자들이 기뻐할 것밖에 없을 것이다.

 

[5-6]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다윗은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였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인인 사람이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특히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밖에 의지할 것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면 우리의 모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그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 그의 긍휼과 인자의 품에 안겨야 할 것이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그를 후대하심을 확신하고 있다. 지금은 원수들이 그를 핍박하고 대적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고 그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을 확신한다. 시편 34:8에서 그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했다. 로마서 8:32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한다.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의 고난 중에서도 우리를 건져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다윗은 또 이런 확신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송하겠다고 고백한다.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후대하심은 그의 기쁨의 이유이며 찬송의 이유이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기쁨과 찬송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교훈을 받았다(4:4). 또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성도들의 삶에 때때로 고난의 시간이 있음을 알자.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버려두시지만,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고(고후 1:8-9), 교만치 못하게 하고(고후 12:7),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한다(119:71).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다윗처럼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기도하자. 우리는 심령의 눈이 밝아져서 우리에게 고난의 환경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를 원하고 또 우리 자신의 부족을 깨닫기를 원하며 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해이해지거나 하나님을 대항하여 범죄치 않기를 원한다.

 

또 우리는 고난 중에서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자.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 온전한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14:13-14). 또 히브리서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만 의지하자.

 

 

14: 어리석고 부패된 인생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 . .

 

다윗은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며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섭리자이시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부정하는 것이 큰 무지요 어리석음이듯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큰 무지요 어리석음이다.

 

또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는 그 행위가 부패하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두려워함이 없이는 악을 떠나지 못한다.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죄악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는 참된 도덕성을 찾기 어렵다. 세상에도 비교적 선한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의 선행은 결함이 있고 환경에 따라 변하며 흔히 자기 자랑을 동반하고 위선적이다.

 

[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을 보시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다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니 확실한 사실이다. 세상의 종교들은 우상숭배적이고 고행과 금욕을 가르치나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의와 선을 행하게 하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 아니고서는 우상숭배와 죄를 떠날 수 없고 참 경건과 도덕성을 가질 수 없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다시 번역하면, “죄악을 행하는 자, 곧 내 백성을 떡 먹듯이 먹으며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 자는 다 무지하뇨?”(KJV, NASB, NIV). 악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 . . .

 

다윗은 또,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라고 말한다. ‘거기서라는 말은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 악인이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악을 행하는 곳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크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함께 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심을 보고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한다(삼상 18:12, 28-29).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도우신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 . . .

 

다윗은 또,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라고 말한다. 악인은 가난한 자 즉 고난당하는 성도의 계획을 부끄럽게 한다. 즉 그는 그 계획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려 한다. 그것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피난처가 되신다. 그것은 성도의 특권이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나오기를 소원하였다. 이것은 경건한 자들의 소원인 동시에 예언적 간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온에 보내주셨다. 다윗의 예언적 간구는 성취되었다. 동일한 예언이 이사야 2:2 이하에도 나온다.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산 즉 예루살렘이다. 주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고(24:4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원수의 핍박 아래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을 뜻하며 또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또 영적으로 죄와 사탄과 사망에 포로된 인생들이 구원받을 것을 의미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1:21). 우리는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이다. 사실상, 죄와 사탄과 사망으로부터의 구원보다 더 큰 복이 무엇이며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고(10:20), 또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다(살전 5:16, 18).

 

 

시편 1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무신론은 어리석은 사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신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무신론자는 부도덕하다. 어리석은 무신론자들은 그 행위가 부패하고 가증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도덕의 근거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죄를 멀리하고 의와 선을 행하게 된다. 무신론에서는 도덕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이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므로 역사상 무신론자들은 많은 악을 행하였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해왔다. 구원받은 우리는 오직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성도는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새 세계를 만드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은 시온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회개와 구원의 운동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장될 것이며(24:47; 1:8), 오늘날 온 세상에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감사하며 그의 뜻대로 의롭게만 살자.

 

 

15: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자

 

[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주의 장막주의 성산은 천국을 가리킨다. 천국에 들어가 살 기에 합당한 자들에 대해 본문은 열한 가지의 자격을 말한다.

 

첫째로, 정직하게 사는 자이다. ‘정직하게라는 원어(타밈 !ymiT;)완전하게라는 뜻이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였고, 욥기 1:1, “[욥은] 순전하고[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말했다. 완전함이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며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성도의 성화(聖化)의 목표는 도덕적 완전함이다.

 

둘째로, 의를 행하는 자이다. 의는 기준에 맞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과 뜻을 반영한다. 양심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교훈대로 사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주관과 편견과 이권(利權)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객관적 원칙 즉 그의 계명과 성경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셋째로, 그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진실은 사실 그대로를 가리킨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행동 원리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쟁이의 아비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22:15). 성도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든지 해가 되든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넷째는, 그 혀로 참소하지 않는 자이다. ‘참소한다’(라갈 lg'r;])는 원어는 돌아다니며 거짓말로 남을 비방한다, 중상(中傷)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악한 행위이다. 느헤미야의 원수들은 그가 유다 사람들과 함께 모반하려 한다는 거짓말로 그를 비방하였다(6:6). 출애굽기 23:1,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말했다.

 

다섯째는, 그 벗에게 악을 행치 않는 자이다. 악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죽인 일이나(4:8)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판 것이나(37)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아 넘긴 것은 다 악한 일이었다. 앞에서 말한 거짓된 비방, 명예 훼손, 사기, 도적질, 인신 매매, 폭력, 살인, 강간 등은 다 천국에 합당치 않은 악한 일들이다.

 

여섯째는, 그 이웃을 훼방치 않는 자이다. 훼방은 남의 흠을 들어 그를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이웃에 대한 말은 정당한 것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꼭 필요한 경우란, 재판 석상에서 증언하는 것이나 남의 거짓된 비난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나, 교회의 유익을 위해 공적으로 증언하는 것 등이다. 바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후메내오와 빌레도, 부겔로와 허모게네, 구리장색 알렉산더 등을 언급했고(딤전 1:20; 딤후 1:15; 2:17; 4:14),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언급했다(요삼 9). 그러나 우리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7:1)는 주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일곱째는, 그의 눈에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자이다. ‘망령된이라는 원어(니브제 hz,b]ni)야비한, 비열한이라는 뜻이다. 그는 비열한 자를 칭찬하거나 높이지 않고 멸시한다. 잠언 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했다.

 

여덟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요(8:13),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된다(16:6).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요소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누렸던 아합 왕보다, 비록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한 선지자 엘리야가 확실히 더 존귀하고 가치 있는 자이다.

 

아홉째는, 자기가 한 맹세가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되어도 지키는 자이다.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맹세를 지킬 것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신명기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입다의 귀한 점은 그가 자기에게 해로운 서원을 이행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무남독녀(無男獨女)인 딸을 서원대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렸다(11).

 

열째는,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 자이다. ‘변리라는 원어(네쉐크 &v,n<)이자 혹은 고리대금(usury)’이라는 뜻이다(BDB).7) 성경은 사회에서 인정된 대금업 혹은 은행업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지만(25:27; 19:23), 성도 간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나 특히 고리대금(高利貸金)을 금한다(22:25; 25:35-37).

 

열한째는,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불의의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장로나 집사의 자격으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딤전 3:3, 8; 1:7). 우리는 돈을 정당하게 벌어야 한다. 잠언 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자들의 자격은 도덕적 완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우리의 도덕적 완전이다(5:20, 48; 7:21; 살전 4:3; 딤후 3:17). 빌립보서 4:8, “무엇에든지 참되며 . . .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도덕적 완전은 단지 신앙의 문제가 아니고, 행위의 문제, 곧 윤리의 문제이다.

 

도덕적 완전은 의와 진실과 선을 가리킨다.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게 살고 진실을 말하며 이웃에게 선을 베푼다. 그들은 이웃을 거짓말로 비방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고 남의 흠을 들어 비난하지 않고 또 비열한 말을 하는 자들을 멸시한다.

 

또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경하고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은 비록 자기에게 해가 될지라도 갚는다. 또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불의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않고 또 뇌물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덕적 완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시험이 올 때 넘어지기 쉽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은 영원히 요동치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을 것이다(7:24-27; 벧후 1:10-11).

 

 

16: 하나님은 나의 기업

 

[1-2]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 . .

 

다윗은 말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네가](원문)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며 그의 보호하심을 구한다. 세상에는 성도를 범죄케 하는 마귀의 시험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의 보호자요 피난처이시다. 이것은 성도에게 큰 복이다. 다윗은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말한다(NASB, NIV; 이 번역이 옳다고 봄). ‘라는 말은 주인, 소유자, 왕이라는 개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 즉 우리의 주인과 소유자와 왕이시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복이시다. 하나님은 땅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배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것,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은 다 헛되다(전도서).

 

[3-4]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를 존귀한 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친 백성이기 때문이다(벧전 2:9). 다윗은 그들에게 그의 모든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들은 괴로움이 더할 것이다. 세상에는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헛것이다(96:5; 10:11).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헛수고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많은 괴로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방신의 이름도 미워해야 한다.

 

[5-6]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은 성도의 산업 곧 기업이시다(73:26; 119:57). 땅에 있는 물질적인, 육신적인 것, 즉 땅이나 집이나 금은보석이나 현금 등은 지금 있다가 장차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기업이시다. 은 기쁨과 즐거움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분깃을 지켜주신다. ‘분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영적, 육체적 복, 현세적, 내세적 복, 개인적, 가정적 복을 포함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복이라도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면 계속 복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복을 지켜주시면, 우리는 영원히 복된 자가 될 것이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배정하시고 주신 구역, 즉 현재 그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복이 실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신적, 육신적 복은 참으로 아름답다. 거기에 더하여, 성도가 장차 들어갈 새 하늘과 새 땅과 거기서 누릴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과 영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복이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하나님은 교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고 말했다. 사람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잘못 행할 때도 많고 알면서도 연약해 넘어질 때도 많다. 그때 하나님의 교훈은 크게 유익하다. 그 교훈은 오늘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다윗은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한다. 세상에는 교훈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1:7).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교훈을 감사히 받았고 교훈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큰 죄를 지은 후 선지자 나단이 그의 죄를 지적하고 그를 책망했을 때 즉시 회개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교훈을 겸손히 받는다. 하나님의 교훈은 생명과 평안의 길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의 심장이 밤마다 그를 교훈한다고 말한다. ‘교훈한다는 원어(야사르 rs'y:)책망한다는 뜻이다. “그의 심장이 밤마다 그를 교훈한다는 말은 낮에 진지하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속에 간직되어 밤에도 그를 교훈하고 책망한다는 뜻일 것이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항상 그 앞에 모시고 살았다. 그것이 경건한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높이며 경배하며 그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그에게 기도하는 삶이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찾고 그의 도움을 구하지만, 평안하고 건강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불경건하게 살기 쉽다. 그러나 경건한 자는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 다윗은 어린 목동 시절에도, 또 왕이 된 후에도 경건하게 살았다. 아브라함은 이사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 요셉은 종살이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오른편에 계셨다. 오른편은 힘있는 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편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이 되신다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이 되셨다. 성도가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는데(40:31), 그를 항상 모시고 산다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요동치 않는다고 고백한다. ‘요동치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어 불안하거나 근심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 힘을 얻어 환난 중에서도 평안함을 얻고 담대하며 낙심치 않는다. 풍랑 중에 당황했던 제자들은 믿음 없다는 책망을 들었으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러므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삶으로 심령에 요동함이 없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다윗은 이러므로 그의 마음이 기쁘다고 말한다. 성령의 열매는 기쁨이다(5:22).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14:17). 그러므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 .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다(살전 5:16-18). 하나님 안에 기쁨이 있고 그와 교제하는 자마다 그 기쁨을 맛볼 것이다. 다윗은 또 내 영광도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내 영광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존귀한 부분인 영혼을 가리킨다. 그것은 내 마음이 기뻐한다는 구절과 뜻이 같다.

 

다윗은 또 그의 육체도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영혼의 기쁨뿐 아니라 육체의 평안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영육의 복을 주신다. 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성막 제도뿐 아니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고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8:3-4).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본절은 앞에서 말한 영육의 기쁨과 평안의 이유를 다시 보충한다. 다윗의 기쁨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음부라는 원어(쉐올 l/av)무덤혹은 지옥을 가리킨다. 여기서 그것은 영혼이 들어가는 곳이므로 지옥을 가리킬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지옥에 던지우면, 살아 있을 때 그의 기쁨과 즐거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는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고 기뻐한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므로 기뻐한다고 말한다. ‘그의 거룩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다윗은 죽었고 그의 몸은 썩었다. 이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이 예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죽은 지 3일 만에 몸이 썩지 않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로 그에게 보이실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이시므로 우리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다. 그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다(16:22; 27:16). 생명의 근원은 그에게 있다(36:9). 사람은 범죄함으로 죽게 되었었으나 하나님의 죄사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는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3:16). 예수께서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다(5:24).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시다(6:48). 그가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10:10).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또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며 성도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천국은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눈물과 죽음과 아픈 것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21:4).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기쁨이 아니고, 영원한 기쁨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유일한 복’ ‘나의 기업으로 바로 알자. 창조주 하나님은 곧 섭리자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교훈을 받자. 그것이 경건한 삶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교훈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영생과 기쁨을 누리자.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며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혼은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고 우리의 몸도 무덤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또 구원의 결과는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다.

 

 

17: 정직한 부르짖음

 

[1]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운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소원한다. ‘정직함이라는 원어(체데크 qd<x,)의로움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게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고난 중에서 성도는 때때로 부르짖어 기도한다. 다윗은 또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한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2-3]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나의 판단이라는 말은 나에 대한 판단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윗은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려고 애썼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잘못 행함이 없었고 말로라도 범죄치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실은 어두웠다. 그는 원수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런 고통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담대한 호소를 할 수 없을 것이다.

 

[4-5]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사람의 행사(페울로스 t/L[up)[행위들]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성도에게 믿음과 사상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한 행위와 삶도 중요하다. 성도의 행위의 표준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성경의 주요 내용은 강포한 자의 길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았고 강포한 자의 길에 행하지 않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걸음은 하나님의 길, 곧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치신 생활 방식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않았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 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 . . .

 

다윗은 또 말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 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자임을 믿었다. 시편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인격자이시므로 기도에 응답하시며, 긍휼이 많으시므로 고통 중의 부르짖음을 돌아보시며, 전능하시므로 무엇이든지 원하시면 도우실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기도의 응답은 때때로 더딘 것같이 보이나 우리는 낙심치 말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시편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말한다. 믿음의 선진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모세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사무엘도, 다윗도 그러했다. 히스기야,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는 다 기도의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새벽에 기도하셨고,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고, 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7-9]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주 하나님을 믿는 자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며 그를 의지할 것이다. 시편에는 하나님께 피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5:11; 7:1; 11:1; 16:1).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오른손은 능력의 손이다. 세상에는 성도들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이 드러날 때 성도들을 미워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워하고 시험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하는 자들을 그의 대적들과 원수들로부터 그의 능력의 손으로 구원하신다.

 

주의 기이한 인자는 사람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로 도우심을 가리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인자의 손길이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시시때때로 그의 긍휼과 인자로 우리를 도우신다.

 

다윗에게는 그를 압제하는 악인들, 그를 에워싼 극한 원수들이 있었다. 성도들에게 가장 악한 원수는 사탄이며 그밖에도 많은 악한 원수들이 있다. 다윗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기를 구한다. 눈동자는 사람의 몸의 지체 중에서 매우 민감하게 지키는 부분이다. 눈꺼풀은 자동셔터문, 눈썹은 보초병, 그리고 눈물샘은 자동세척장치와 같다. 사람이 자기 눈동자를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날개 그늘 아래 그를 감추시기를 간구하였다. 시편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36:7; 57:1; 91:1, 4). 어미새의 날개 그늘은 새끼들에게는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장소이다. 하나님의 날개는 그 어떤 어미새의 날개보다 더 평안하고 안전하다.

 

[10-12]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성도를 핍박하는 악인은 어떤 자인가? 첫째로, 악인은 자기 기름에 잠긴 자, 즉 물질적 부요 속에서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자이다. 둘째로, 악인은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는 자이다. 악인은 자신을 크게 생각하며 자랑하는 말을 잘 한다. 사람의 교만한 마음은 그의 눈과 얼굴 표정과 특히 그의 말에서 나타난다. 셋째로, 악인은 성도를 해치려 하는 자이다. 그는 성도의 걸음을 에워싸며 눈을 땅을 향하게 한다. 11절 후반은 옛날 영어성경(KJV)처럼 그들의 눈을 땅을 향하게 하나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것은 성도를 해하려는 악인들의 음흉한 표정을 묘사한 것 같다. 그들은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와 같다.

 

[13-14]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악인들은 또 이 세상에서 자기의 분깃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이 세상에서 물질적 부요를 누리며 자녀들도 많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합당치 않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한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저를 대면하여 굴복시키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동안 악인들은 자기 세상인 양 활개를 치지만, 그가 일어나시면 상황은 즉시 바뀔 것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의로운 삶을 끝까지 힘쓰다가 주님을 뵈올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후에 죽을 때까지 의롭게 살아야 한다. ‘깰 때에라는 말은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주의 형상을 뵈올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이 될 것이다.

 

 

시편 17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이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죄를 멀리함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고난 중에 자신의 의와 순전을 고백하였다. 우리는 악인처럼 남을 해치고 강포하고 교만하고 땅의 것만 구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며 그의 인자를 의지하며 구원을 간구하자. 성도의 의로운 삶은 환난 중에 기도의 담대함이 될 것이다. 의인들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5:16; 요일 3:21-2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그의 날개 아래 감추실 것이며 우리의 원수들을 파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내세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살자.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이다. 악인들은 이 세상의 헛된 것만 구하는 자들이지만, 성도는 하나님과 내세 천국을 보화로 삼는다. 우리는 의롭게 살다가 죽은 후에 영광의 주님을 뵈올 것이다.

 

 

18: 나의 힘과 구원이신 하나님

 

1-27,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1-3]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 . .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말한다. ‘반석이라는 원어(셀라 [l's,)울퉁불퉁한 바위나 절벽을 가리키는 말이다(BDB). 그것은 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바위이다. ‘바위라는 말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을 말한다. ‘산성이라는 원어(미스가브 bG;c]m)안전하게 높은 곳을 가리킨다(BDB). ‘구원의 뿔은 구원의 능력을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들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살거나 세상의 재력가나 권세자를 힘으로 삼는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에서 그들은 완전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 특히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 우리의 반석, 우리의 요새, 우리의 피할 바위, 우리의 방패와 산성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힘과 도움이 되셨고 그 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또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고난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며 그의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오늘날도 고난 많은 세상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이 우리의 힘이 되시고 그것을 체험한 자들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4-6]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사망의 줄(케벨 lb,j,)[혹은 고통’](LXX, KJV)이 나를 얽고[에워싸고], 불의(벨리야알 l['Y'lib])[혹은 악한 자들’]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을 죽이려는 음모와 시도들이 그를 에워쌌고 악한 원수들이 홍수같이 그를 두렵게 했고 지옥에 떨어뜨릴 듯한 고통이 그를 둘렀고 그를 죽이려는 올무들이 여기 저기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환난 중에 다윗의 대책은 주위 환경여건만 쳐다보지 않고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아뢰었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부르짖었다. 기도, 특히 부르짖는 기도는 원수들 앞에서 성도의 가장 강한 무기이며 환난을 당한 성도가 가질 가장 좋은 대책이다. 환난 중에 성도의 할 일은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전에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의 전은 천국과 땅의 성전을 다 의미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신다(50:15; 7:7).

 

[7-8]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 . . .

 

다윗은 말한다.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수들에게 진노하고 징벌하셨다. 그가 노하시면 그의 음성은 천둥소리 같아서 땅과 산의 터를 진동시키시고, 그의 코에 연기가 오르고 그의 입에 불이 나와 원수들을 징벌하신다.

 

[9-11]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 . . .

 

다윗은 말한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굽히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하늘 위에 계시지만 고난당하는 성도를 돕기 위해 땅에 내려오신다. 그는 그룹을 타고 나시며 바람 날개로 높이 뜨신다. 그룹은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들이다. ‘바람 날개라는 말은 영의 날개라는 뜻으로 천사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수종든다. 그들은 빛처럼 빠르게 이동하며 일한다. 하나님의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다. 그는 물의 흑암과 빽빽한 구름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신다.

 

[12-15]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그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파하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그 영광의 광채로 인해 빽빽한 구름이 우박과 천둥 번개로 변할 것이다. 천둥은 그의 음성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박과 불을 내리신다. 그는 자연 현상들을 주관하시고 그것들을 사용하신다. 그는 천둥과 번개, 우박과 불 등으로 원수들을 흩으시고 파하신다. 그는 자연 현상들을 자유로이 사용하셔서 원수들을 징벌하시고 자기 백성을 그들에게서 구원하신다.

 

[16-19]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많은 물은 많은 환난을 가리킨다. 다윗의 원수들은 세력이 강하고 다윗보다 힘센 자들이었다. 다윗이 당한 환난은 재앙과 같았다. 그러나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환난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는 자, 그의 뜻에 순종하며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20-24]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의롭고 깨끗하게 행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그 앞에 두고 버리지 않았다. 성경 교훈대로 사는 것이 의요 성경 교훈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 악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행했다. ‘완전하다는 원어(타밈 !ymiT)책망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의를 따라, 그의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의롭고 깨끗한 행위에 대해 상주시고 갚아주신다. 의로운 자는 평안이 강과 같을 것이며(48:18), 유다 왕 히스기야처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며(왕하 18:6-7), 환난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25-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의 행위에 따라 그에게 공의로 보응하신다.

 

첫째로,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신다. ‘자비하다는 원어(카시드 dysij;)자비하다, 친절하다는 뜻이다. 주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5:7). 또 야고보서 2: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한다.

 

둘째로,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신다. ‘완전하다는 원어(타밈 !ymiT)책망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따르며 흠 없고 책망할 것 없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지극히 정당하고 선한 방식으로 응답하시며 복을 주시며 능력을 베푸신다.

 

셋째로,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신다. 죄는 우리를 더럽고 불결하게 만들지만 죄를 떠난 자는 깨끗한 자이다.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한다(고후 7:1).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그의 깨끗하심, 즉 불의나 부당함이나 거짓이 없는 그의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처분을 항상 내리실 것이다.

 

넷째로,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거스르심]을 보이신다. ‘사특하다는 원어(익케쉬 vQe[i)비뚤어지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훈을 거스르고 비뚤어지고 패역하게 행하는 자에게 노와 분으로 갚으신다(2:8-9).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48:22).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원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이라는 뜻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에 대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시기 때문이다. ‘곤고한 백성은 남에게 자비를 베푸나 원수들의 핍박으로 곤고한 자들을 가리킨다. 교만한 눈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비뚤어진 악인들을 가리킨다. 불경건과 교만은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성도는 돌아보시며 구원해주시지만 악하고 교만한 자들은 낮추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심신의 고통을 주는 큰 질병, 경제적 큰 어려움, 자연적 재난이나 큰 사고, 전쟁에서의 패배 등을 주셔서 그들을 낮추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서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신이시다. 그는 살아계셔서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지키시고 환난에서 구원하신다. 그는 우리의 힘과 구원, 우리의 반석과 요새, 우리의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환난 때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환난 때에 다윗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에게 기도한다. 기도, 특히 부르짖는 기도는 환난 당한 성도의 가장 좋은 대책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깨끗하게, 완전하게만 살자.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앞에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산다면, 우리에게 닥친 환난은 염려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과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다윗의 의와 그 손의 깨끗함을 따라 상주시며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의 의와 온전함에 상주실 것이다.

 

28-50, 이길 힘과 구원을 주심

 

[28-29]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등불을 켜시며 흑암을 밝히실 것이다. 흑암은 슬픔과 불행을 상징하고, 등불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슬픔과 불행을 제거하시고 그를 건져내셔서 기쁨과 행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또 그러면 다윗은 사람을 의지하거나 칼과 창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적군에 달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을 뛰어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용감히 행하는 그의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30-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 . . .

 

다윗은 또 말한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精美)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다. ‘는 생활 교훈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 지침으로 주신 교훈은 완전하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精美)하다. ‘정미(精美)하다는 원어(체루파 hp;Wrx])제련되다, 정제(精製)되다는 뜻이다. 용광로에서 깨끗하게 제련된 광석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고 다 진리이며 다 유익하다. 신구약성경은 오류가 없고 완전하다. 시편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하는 자, 즉 그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의 방패이시다. 그는 환난 날에 원수들의 불화살을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 그는 자기 백성이 의지할 반석이시며 피난처와 요새가 되신다. 이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안 계신다. 그는 우리를 죄와 죽음과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또 마귀와 악령들로부터 건져주신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소망이시다.

 

[32-34]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으로 띠를 띠우신다. 육신적 힘도 주시지만, 특히 영적인 힘, 즉 믿음과 소망으로 살고, 선을 행하고 낙심치 않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 싸우고, 고난을 참을 힘을 주신다. 우리는 때때로 연약하고 피곤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이 되신다.

 

또 그는 우리의 길을 완전하게 하신다. 그는 우리의 행위와 삶이 흠이 없게 되도록 도우신다. 우리의 거룩한 행위와 온전함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이끄시는 은혜이다. 우리는 성령의 힘과 도우심으로 거룩하고 선한 인격을 점점 더 이룬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고 우리를 높은 곳에 세우신다. 암사슴 발은 튼튼하고 지치지 않고 잘 달리는 발이다. 그것은 힘있는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골짜기는 고난을, 높은 곳은 평안과 승리를 가리킬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빈번히 실패할 것이지만, 그의 은혜로 평안과 승리의 삶을 산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의 손을 가르쳐 원수와 싸우게 하시며 우리의 팔을 굽혀 놋활을 당기게 하신다. 성도는 사탄과 악령들과 세상의 악한 자들과 싸운다(6:10-13).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의 과정이다. 디모데전서 6:11-12,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훈련 대장이시다.

 

[35]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의 방패를 다윗에게 주셨다. 그런 방패가 없었다면, 다윗은 원수의 화살들에 부상당했거나 심지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패로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은 다윗을 굳게 붙드셨다. 다윗은 마음이 연약해지고 두려움이 생기고 생각이 착잡해질 때가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크게 낙심하거나 요동치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손으로 그를 붙드셔서 그 모든 어려움을 잘 참고 이기게 하셨다.

 

또 하나님의 온유함은 그를 크게 하셨다. 이새의 막내아들, 양 치던 목동 다윗을 들어 유대 나라의 왕을 삼으신 자는 온유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는 다윗이 실수하고 범죄했을 때도 그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들어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걸음을 넓게 하셨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다는 원어는 내 아래에 있는 나의 발판들을 넓게 하셨다는 뜻이다. 징검돌을 딛고 개울을 건널 때, 그 디딤돌이 작으면 발이 미끄러질 위험이 크겠으나, 그 디딤돌이 크고 넓으면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잘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걸음에 디딤돌들을 넓게 하셔서 그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도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발 아래 겨우 디딜 만한 작은 돌들을 놓아두지 않으시고, 크고 넓은 돌들을 두셔서 걷기에 안전하고 실족지 않게 하실 것이다.

 

[37-39]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저희를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다윗은 원수와 접전하여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도 원수 마귀와 악령들이 우리 발 아래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 원수들은 참으로 강하지만, 우리의 대장 예수는 전쟁에 능한 큰 용사이시며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마다 승리할 것이다. 전쟁에서의 다윗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그에게 띠 띠우셨고 그를 대적하여 일어난 자들로 그 앞에 굴복케 하셨다.

 

[40-42]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같이 부서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라는 원어는 옛날 영어성경처럼 내 원수들의 목을 내게 주사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다윗이 원수를 멸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 원수들은 부르짖었으나 구원할 신이 없었고 심지어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은 악한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다윗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같이 부서뜨렸고 거리의 진흙같이 쏟아버렸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수들을 완전히 패배케 하셨다.

 

[43-45]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저희가 내 풍성(風聲)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전임자 사울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다.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여러 번 죽이려 하였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백성의 여론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 항상 있었다. 그는 백성의 다툼 속에서 피곤하거나 낙망하기도 했을 것이나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은 그를 백성의 싸움에서 건져주셨다. 그는 그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열국을 제압하는 권세도 주셨다. 다윗은 열방의 으뜸이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다윗을 알지도 못했던 백성들이 이제 그를 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시며 만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시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있다. 이방인들은 다윗의 소문을 들은 즉시 그에게 순복하며 복종할 것이며 그들은 쇠약해져서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올 것이다. 항복할 것 같지 않았던 이방 나라들이 즉시 또 완전히 복종할 것이다. 그들은 심히 무력해져서 두려워 떨며 다윗에게 항복할 것이다.

 

[46-50]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報酬)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나님께서는 생존하신다. 세상의 다른 모든 신들은 인간의 고안물이며 생명이 없는 헛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상을 섭리하고 통치하신다. 그는 다윗을 위해 이방 나라들을 그의 발 아래 복종케 하셨고 그를 원수들과 대적자들로부터 구원하셨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감사하며 찬송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구원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생존하신다. 그는 살아계셔서 많은 일들을 행하셨다. 예레미야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힘을 주신다. 그는 우리의 등불을 켜셔서 기쁨과 힘을 주신다. 그는 우리에게 힘으로 띠 띠우시며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고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 중에서도 낙망치 말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신다. 그는 다윗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시고 그를 건져주셨다. 그는 다윗을 백성의 다툼에서 건져주셨고 민족들로 다윗에게 복종케 하셨다. 그는 다윗에게 큰 구원을 주셨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자.

 

 

19: 하나님의 말씀

 

[1-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 . . .

 

본문은 말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속성을 증거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선포하고 그의 창조 사역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은 이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의 지혜와 능력을 알 수 있고 그것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다(1:20).

 

자연계시는 무언(無言)의 계시다. 그것은 무언의 선포요 무언의 지식이다. 낮은 낮에게 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달과 별들을 통해 전하지만,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다. 자연계시의 소리8)는 세상에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미친다. 해는 멋있는 새 신랑과 같고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 선수와 같으며, 온 세상은 그것의 따뜻한 온기(溫氣)를 받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연 은총 속에서 살고 있다(14:17; 17:25-28).

 

[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 . . .

 

본문은 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한다.

 

본문은 성경의 복된 성격과 효능에 대해 말한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은 다 성경을 가리킨다. 첫째로, 성경의 규범은 완전하다. 성경은 오류가 없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규칙이다. 성경은 완전한 규범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악됨을 깨우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나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병든 영혼을 고치며 침체된 영혼을 회복시킨다.

 

둘째로, 성경의 증거는 확실하다. 성경의 증거가 확실하므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와 내용이 된다. 그것은 우둔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준다. 누가복음 1:4는 그 책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가 배운 내용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고, 디모데후서 3:15는 성경이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말했다.

 

셋째로, 성경의 교훈은 정직하다. 성경은 의의 지침이 된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참 평안과 기쁨을 준다.

 

넷째로, 성경의 계명은 순결하다. 성경의 계명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며 우리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는 거룩한 계명이다. 순결한 말씀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한다. 죄는 영적으로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들지만, 의와 거룩은 사람의 눈을 밝게 만든다.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 . . .

 

본문은 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악에서 떠나야 한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또 그 진리는 영원하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할 것이다. 또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고 다 의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말씀이다. 세상에서 금은 가치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세상 물건은 결국 썩어질 것이며 마지막 심판 날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한 것들, 즉 믿음과 의, 천국과 영생을 가져다 준다. 또 성경은 송이꿀보다 더 단말씀이다. 꿀은 입맛에만 좋지만, 성경은 송이꿀보다 더 달아 우리의 영혼에 참된 기쁨과 위로와 힘과 용기를 준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본문은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말한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하나님의 뜻은 계명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을 요구하신다(10:12-13).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세상의 법에도 그것을 어길 때 부과되는 벌칙이 있다. 하나님의 법에도 그것을 어길 때 받을 벌칙이 들어 있다. 신명기 28:15 이하는 그 벌칙들로 육체적 질병, 자녀들의 불행, 물질적 궁핍, 전쟁 같은 국가적 재난 등의 재앙을 열거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복을 누리며 큰 상을 받을 것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것을 지키는 자는 상이 크다. 신명기 28:2-6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할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사회적 복에 대해 증거한다. 순종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인데도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은혜로 복을 주시고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2-13]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故犯罪)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에삼 !t;yae)[온전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허물(쉐기아 ha;ygiv)실수로 범하는 죄, 부지(不知) 중에 범하는 죄를 말한다. 레위기 4:2그릇 범하는 죄’(쉐가가 hg;g;v])와 같다. 우리는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는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나 영적으로 어린 자들에게는 실수로 범하는 죄들이 적지 않으며 사람은 무지하여 자기 실수를 잘 깨닫지도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기도 중에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그리고 친구의 충고를 통해 자신의 부족과 실수를 깨달을 수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나 선생의 책망과 징계를 통해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고쳐 온전케 된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우리는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난다는 말은 깨끗케 된다는 뜻이다. 숨은 죄도 죄이다. 그러므로 그 죄도 지적을 받고 깨닫고 버림으로 깨끗함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숨겨진 죄가 하나도 없도록 하나님께 고백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고범죄’(故犯罪)라는 원어(제딤 !yrize)뻔뻔스런 죄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인 줄 알면서 범하는 죄이다. 뻔뻔스런 죄는, 실수로 짓는 죄보다 더 큰 죄이다. 예를 들어, 배교(背敎)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고의로 저버리고 대적하는 것으로 가장 큰 고범죄이다. 우상숭배, 의도적 살인, 간음 등도 고범죄이다. 실수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으나,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했다. 위선도 고범죄이다. 우리는 고범죄를 짓지 말고 그런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직함온전함이다. 그것은 크고 작은 죄를 떠나는 것이다. 고범죄는 물론이고 실수의 죄까지도 깨닫고 버리는 것이다.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 . . .

 

본문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시편은 성도들의 마음의 묵상이요 입술의 고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고 후시대 성도들을 위해 교훈이 되게 하셨다. 그것들은 성령의 특별한 감동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전달하는 성경말씀이 되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자. 자연만물은 세상에 하나님께서 계심과 그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핑계할 수 없는 증거이다.

 

둘째로,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한 말씀임을 알고 그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자. 또 그 말씀이 꿀보다 더 단 것을 체험하자. 우리는 성경 읽기를 힘쓰자.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며, 또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큰 상을 얻는다.

 

셋째로, 성경은 무엇보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멀리함으로 정직한 자, 곧 온전한 자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3: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온전함이다.

 

 

20: 환난 날에 도우시기를 기원함

 

[1-3]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 . . .

 

다윗은 말한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인생의 여정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지난 130년의 세월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표현했다(47:9). 모세는 시편 90:10에서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시편 34:19는 의인에게 고난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육신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도우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를 높이 드신다는 말은 안전한 곳에 두신다는 의미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고 표현했다(48:16).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46:1). 환난 때에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큰 복이다. 다윗에게 응답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응답하셨고 또 이 이후에도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신 곳 성소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성소는 일차적으로 천국을 가리키지만(왕상 8:30), 또한 땅 위에 있는 성막과 성전도 가리킨다(25:8).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성소에 거하시고 거기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말했고(왕상 8:29), 다니엘은 포로 생활 중에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6:10).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성전이시다(2:19, 21). 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시온에서 우리를 붙드신다. 그러므로 구약 성도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고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합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18:19; 14:14).

 

본문의 는 참된 성도를 가리킨다. 다윗은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다른 성도에게도 같은 체험이 있기를 기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다.

 

다윗은 소제와 번제에 대해 말한다. 소제는 곡물 제사로서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며 드리는 예물이고, 번제는 짐승을 온전하게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아의 대속사역에 대한 믿음과, 제사드리는 자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에 대한 결심을 나타낸다. 원문에는 소제들번제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예배, 모든 신앙고백, 모든 봉사, 모든 순종, 모든 헌금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많은 예배와 많은 찬송과 많은 기도와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의 모든 예물, 모든 감사와 신앙고백과 헌신과 순종과 봉사와 헌금을 하나님께서 과연 기쁘게 받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옛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4:4). 하나님께서는 그를 참으로 경외하고 그의 모든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며 그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의 예배들, 찬송들, 기도들, 봉사들, 헌금들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또 그가 사람의 모든 예물들을 기쁘게 받으시면 그는 예물 드린 자에게 더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다.

 

[4-5]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계획]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기뻐 외치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청원, 간구]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성도에게는 마음의 여러 소원들과 계획들, 기도의 제목들이 있다. 특히 환난 중에 있는 자에게는 그 환난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중요한 소원일 것이다. 성도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선한 소원과 기도 제목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과 청원을 들어주시기를 기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14:13).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했다(2:13).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소원은 육신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지만, 그가 주시는 선한 소원들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시다(65:2).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환난에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기뻐 부르고 승리의 깃발을 세우겠다고 말한다. ‘승리라는 원어(예슈아 h[;Wvy])구원, 승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확실하므로 성도의 구원과 승리도 확실하다. 온 회중은 고난당하던 형제의 구원과 승리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할 것이다.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고 본다. 구약시대에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은 다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표이었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뜻이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디도서 3: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그들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성령께서 인치신 기름부음 받은 성도가 환난 중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외면치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7-9]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 . . .

 

다윗은 또 말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저희는 굴복하였고 엎드러졌으나 우리는 일어났고 바로 섰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자랑한다는 원어(나즈키르 ryKiz]n")언급한다, 부른다, 자랑한다는 뜻이다(BDB).

 

세상 사람들은 병거와 말, 즉 세상적, 인간적 도움물을 의지한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재물을 의지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르다. 성도는 세상 것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성도는 오직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의 이름만 부르며 의지하며 자랑한다. 그것이 참 믿음이다. 세상 것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헛되이 만드실 때 확실히 실패하고 멸망할 것이다. 사람의 건강도 쇠해지고 물질적 유여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성도를 건지시고 일어나게 하시고 바로 서게 하실 것이다.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요청해야 하며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여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왕이시다. 그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성도에게는 고난과 환난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 가운데 우리의 죄에 대한 징벌로 또는 우리의 인격 훈련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통치자 곧 왕이시다. 또 그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환난 중에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그의 성소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날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선한 소원과 계획, 우리의 청원과 간구의 기도 제목을 그는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망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