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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세월호 1년 특별기고 1년째 ‘수취인 불명’ 남해의 부고… 선체 인양해 희망적 국면 열기를
금빛돌
2015. 5. 1. 11:53
곡절 끝에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빚어낸 특별법 시행령… 국민은 이런 ‘정부 합동 허수아비’를 원하는 게 아니다
[온라인뉴스팀]
다시 4월이다. 꽃보라가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서 등불로 돋아나고, 여자들도 피어서 웃음소리가 공원에 가득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나의 언설로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늙은이의 춘수(春瘦)는 어수선하다.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4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