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큐티나눔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벧후2:5-9)

금빛돌 2014. 10. 18. 20:55

이 베드로후서는 사도베드로가 죽기 직전에 쓴 서신입니다. 그래서 벧후1:13. 내가 이 (육체의)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육체의)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죽기 직전에 벧후 115절에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죽은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합니다.

여기서 이런 것이란 12절에 이미 있는 진리입니다. 또 여기서 이미 있는 진리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벧후116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재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또 벧후 34절에 보면 말세에 거짓선생들이 나타나서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죽은 이후에 거짓선생들이 일어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할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이 진리에 더 굳게 서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후서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이 베드로 후서2장은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선생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벧후 21절을 보시면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백성이란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때도 참선지자만 아니라 많은 거짓선지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거짓선생들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도 말씀을 받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의를 전하는 노아와 일곱 식구들을 보존하셨습니다.

6절과 7절과 8절에 소돔고모라시대에도 그 성을 멸망시키시고, 의로운 롯을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서 있는 경건한 자도 얼마든지 이 땅에서 시험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참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말씀은 이렇게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에 두어서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하시고 완전히 멸망을 시키십니다. 그런데 그 불의한 자들을 심판이 되기 전에는 형벌아래 두시어 심판 때까지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후 37절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7. 이제 (심판 받을)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지금 이 하늘과 땅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하늘과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차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을 하늘과 땅이지만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내일 이 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이 하늘과 땅을 보존하신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39절에 보면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보존하시는 이유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불의한 자라도 심판의 날까지는 보존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자들은 이렇게 당장 심판하지 않고 지키고 보존하는 것 때문에 마치 그들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사람처럼 행동을 합니다.

우리 주위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단들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지금 이단들은 당장 심판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간적으로 보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도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장 심판하시지 않고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게 하기 위함인데 그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당장 심판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현재에는 지키시는데, 형벌아래 두어서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형벌아래 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형벌이란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아니하시고 내어버려두심을 말합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불의한 자들에 대한 현재에 임하여진 하나님의 심판은 내어버려두심입니다.

이것이 불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이 잘못하면 사랑의 징계를 반드시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불의한 자는 하나님께서 당장 간섭하지 아니하고, 징계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더 교만합니다. 그래서 더 악을 행합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존해주신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현재에는 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노아도 그러했고, 소돔 고모라시절의 롯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경건한 자의 고난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는 반드시 그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현재는 하나님의 그 어떤 간섭도 없어서 당장 잘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가시는 복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