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학/설교모음

마음 가난한 자의 행복(마5:3)

금빛돌 2014. 10. 18. 13:09

이 산상설교에 나오는 팔복은 우리 영혼과 마음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육신이 잘되어도 진정한 행복이 올수 없습니다. 지위도 돈도 건강도 진정한 영혼의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내가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해야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국이란 어떤 것입니까?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천국의 가장 큰 특징 기쁨입니다. 그냥 기쁨이 아니라 세상이 알지 못하는--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희락의 기쁨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런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때--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천국의 기쁨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마음이 가난하면 이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가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조건 육신이 가난하다해서 마음이 가난한 것 아닙니다. 신학대학원3학년 때 저는 무작정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골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가면 그 사람들의 마음이 참 가난하여 하나님만 사모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교회에 거지 3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 한 거지는 요즘 뜨고 있는 실미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북파공작원인데, 그때 다리를 다쳤다고 하면서 북한에 갔다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받아주고, 또 저희 집에서 식사도 같이 했습니다. 저녁까지 같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교회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강도사님 참 순진하다. 어째 저런 사람들을 받아주나,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쁜 짓하면 어떻게 하나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육신적으로 가난하다 해서 무조건 영적으로 가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육신이 가난하면서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육신이 부자이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육신이 가난하면서 마음도 가난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또 육신이 가난하면 마음도 가난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가난하여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될 때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가난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합니까?

1)가난이라는 말은 프토코스(ptokos)인데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으로서의 가난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옆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서울에 어느 뷔페음식이 한 끼에 3만원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 느끼는 상대적 가난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절대적 가난을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즉 하나님을 악세사리 식으로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그런 정도의 가난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으면 죽습니다. 난 살수 없습니다, 마음입니다(주여 내가 그렇습니다-모든 것이 다 있어도 하나님 당신이 없으면 난 죽습니다) 이 가난은 시편기자가 말하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가난한 심정입니다. 사슴이 물을 찾는 심정은 사슴이 산에 놀러갔다가 간식으로 물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사슴이 산에서 약초를 먹습니다. 그런데 귀한 약초를 먹고 난후 물을 먹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방금 물을 먹지 않으면 그 산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바로 이런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죽습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또 가난한 마음이란 자신의 마음이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이 완전히 비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또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C.S. 루이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더 선하다, 좀더 낫다, 좀더 거룩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고 악마의 지배를 받고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의 태도는 영적으로 교만이라고 하나님이 선언하셨고, 그런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그 마음이 바로 교만한 마음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습니까?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사모함이 없습니까? 왜 사람들이 신령한 것에 대한 사모함이 없습니까? 왜 사람들이 영혼의 건강에 대한 사모함이 없습니까? 왜 사람들이 예배에 대한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에 답답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없이도, 은혜 없이도, 영혼의 부요함 없이도 얼마든지 육신적으로 의지할 것이 있고, 자랑할 것이 있고, 자신이 내세울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한 예배를 드려도 그저 성전의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로 남을 난도질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심지어 예수님이 와서 설교를 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시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자에게 은혜를 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천국의 기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이란 그저 일이며, 습관이며, 또한 종교적 의무감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굴에 하늘나라의 평안이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자기가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혹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실상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난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실상은 마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내가 교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제일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나의 모든 의를 다 배설물과 같이 여김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까?

1)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은혜를 주셔야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인간은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은혜를 주셔야 우리마음이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난한 마음은 인간적으로 될 수 없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비워야지, 내 마음을 가난하게 해야지한다고 해서 마음이 가난하게 되지 않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 아침이슬처럼 내려질 때 내 마음이 가난하게 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부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마음이 가난해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의사부인이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봐도 인간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에서 시꺼먼 눈물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저는 처음 그것이 무엇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말씀을 사모하여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육신적으로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말씀을 들을 때 마다 한 번도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항상 제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은혜가 떨어진 목사가 될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섭습니다. 능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일을 잘못해도 괜찮습니다.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정말 문제가 됩니다. 돈보다 다 건강보다 지위보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둘째 우리는 인생 광야의 경험을 통해 마음이 가난하게 될 수 있습니다. 모세의 40년 광야생활을 통해서 나는 별수 없는 자라는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인생광야의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인생광야를 경험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리적 광야를 경험합니다.

많은 신앙의 거인들이 우울적 기질이 있다고 합니다. 그 우울적 기질로 말마임아 심령이 가난하게 되어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함으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마치 속이 텅텅빈 고목나무와 같다고-겉으론 멀쩡하지만 내 속에는 완전히 비워있고 썩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인생광야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리게 하시고 낮추게 하셔서--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되게 만드십니다(8).

3)세째는 기도의 광야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가난해 질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가난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재산을 버린다든지, 일부러 고통 속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의 야성을 가지면 마음의 가난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인간은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광야로 나아가십시오. 기도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광야의 자리입니다. 자신의 모든 잘남과 의를 다 비우는 자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만 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혹 기도가 자신의 의가 되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내 무능과 가난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오래 기도하고 나면 항상 살핍니다. 왜냐하면 누가 나를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보면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많이 한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나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교만한 사람이예요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적으로 가난해 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인간적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하게 해주세요, 천국을 경험하게 해 주세요 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결과입니다. 오주여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난하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그 결과적으로 영적으로 행복하며 부요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